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28 - 경험의 함정(2021, 로빈 M. 호가스 / 엠레 소이야르)

마셜 2024. 3. 3. 23:38
728x90
반응형
(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최근 독서모임의 책 선택이 역사책으로 좀 치우치긴 했었다. 나도 큰 책임을 느껴야 하는 편중된 흐름이었고, 더욱이 지난 독서모임에서 내가 골랐던 '게임 속 역사 이야기'가 그럴듯한 제목에 비해 부실한 내용과 엉성한 구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기에, 다른 멤버가 골라준 이 자기계발서 혹은 소프트한 경영학 책은 정말 '양서'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은 것을 대할 때도, 매사 진중한 멤버는 역사가 '오답노트'라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봐야하나를 고민하다가 골랐다는 멋진 추천 이유까지 곁들였다. 
 
 책 내용은 탄탄하고, 구성도 꼼꼼하다. 이야기 중 대학교수가 쓴 책 답다는 평이 나왔는데, 실제로 친절하게 반복하면서 요약과 내용상 진전을 적절히 구사한 책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교육자의 글 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글쓴이의 준비가 아주 잘 된 책으로 특히, 챕터 말미마다 나오는 요약은 우둔한 독자에 속하는 내게도 여러 차례 주위를 환기시켜 주었다. 
 
 물론 이러한 반복, 요약 중심의 구성을 두고 너무 대학교수 스타일의 책으로 강의안 같은 구성을 하다보니 중언부언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실 모든 멤버가 사회생활한 지 10년이 넘었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 생각하면, 차근차근 설명하는 저자가 중언부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도 이는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비판이다. 특히, 의학을 일반적 학문처럼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예리한 지적이 잇달았는데, 장티푸스 진단 사례와 과거에 횡횡했던 사혈 요법 등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판단이었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의학 특성을 간과한 지나친 비판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일면 공감되는 면이 있다. 2024년 현재 기준으로 과거 의학, 그것도 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되기 전 의학 사례를 드는 것은 오히려 신빙성을 떨어트리는 느낌이었다.
 
 책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점 중 하나는, '~~하는 7가지 법칙' 류의 책을 과감하게 비판한다는 점이다. 모든 멤버가 사회인이고, 이제 청년에서 벗어난 나이기에, 그런 책의 단점, 한계에 대해서는 공감했기에.. 유명 대학교수가 과감하게 베스트셀러 들에 비판 목소리를 낸 것은 와닿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말콤 글래드웰' 저서와 비슷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따로 있다. 통념이 다 맞지는 않다. 여러 사례를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이런 절묘하고도 예리한 지적으로 엄청난 재미를 주는 이야기꾼 말콤 글래드웰도 경영학 전공자로 알고 있는데, 학술서는 아니지만, 선을 지키며 충실한 자료에 의거해서도 무협지 수준의 재미를 주는 게 말콤 글래드웰이라면, 이 책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게 역사 학술서 정도의 재미는 주었으니.. 충분히 지인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멤버들끼리 각자 업무에서 경험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말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95% 이상을 의존한다는 행정 분야 종사자의 언급이 있었고,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멤버도 (물론 분야가 의학이다보니) 경험이 중요하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물론 과별로 큰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는 멤버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 분야 중 가장 창의성이 떨어지는 분야는 어디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법학'이라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출처는? 놀랍게도 현직 법학과 교수의 발언이었다. 법학이라는게 조문/판결/논문에 나오는 문장들을 따져서 다시 쓰고, 반대하는 입장에서 쓰고, 설명하기 위해 쓰는 속성이 있다 보니, 다른 학문에 비해 창의성이 많이 필요하다 보긴 어렵다는 친절한 설명이 거의 15년쯤 전에 들은 얘기임에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재미삼아 던졌던 이 질문에 '역사'가 아닐까요라고 한 멤버는 답했다. 역사학도 중 한 명으로서 그 대답에 인문학인 역사에 앞으로 많은 창의성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인용/설명한 광범위한 사례와 연결되어 머니볼 사례도 재미있게 회자되었다. 영화 머니볼은 실화 바탕 베스트셀러 원작으로도 유명하고, 야구 스카웃 문화 아니 그를 넘어 프로야구 패러다임을 바쁜 빌리 빈의 야구철학을 영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를 보면, 이제 막 새로운 스카웃을 시도하는 가난한 구단의 단장 빌리 빈이 할아버지 스카우터들과 회의석상에서 기존의 통념을 모두 무시하라는 발언으로 관객들에게 '속 시원함'을 선사하는데, 현실에서 이런 통찰력과 발상의 전환 능력을 모두 갖춘 리더를 만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에 머니볼이 더욱 명작인 것이고.... 혹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도전해 보시길... 설사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기존 통념을 넘어 성과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영화는 '경험의 함정'보다 더 잘 보여준다. 
 
 어쩌다보니 책 보다 다른 영화를 추천하는 글이 되어버렸는데, 이 책의 장점은 이 외에도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풍부한 인용과 설명을 통해, 다른 더 읽을만한 책을 많이 제시해 준다는 것. 통섭적인 공부에 적절한 책인데, 이런 장점을 가진 책을 만나기가 아주 쉽지는 않다. 책에서 내가 메모했던 읽을 만한 책들을 메모해 본다. 
 

  • 독창성 Originality
  • 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 The Little Book of Plagiarim
  • 팩트풀니스 Factfulness
  • 블링크 Blink
  • 넛지 Nudge

 기약은 없지만, 언제고 읽으면 좋을만한 책으로 보이는 몇 권만 추려서 적은 리스트이다. 언제든 역사공부에 지칠 때면 한 번 독서모임 추천으로 올려봐야겠다. 
 그 외에도 책은 아니어도, 처음 들어본 아래 피터의 법칙도 너무 절묘해서, 설명을 읽은 순간 웃음이 나왔다. 
 

  •  <피터의 법칙>(고성과자를 승진시키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위치까지 승진해 결국 무능해진다는 이론)(p241)

 
 결국 책은 경영학+자기계발서 답게, 깊이 있는 사례와 절묘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마무리된다. 저자도 대단한 것을 기대했으나, 실망하며 책을 덮을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염려되었는지, 부록을 통해 친절하게 독자가 해야 할 일을 되짚어 준다. 바로 '<경직된 경험에서 벗어나 창의성 발현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는 의외로 평범하다. 
 

  1. 취미 활용하기
  2. 관심 분야에 푹 빠지기
  3. 관리자평의회 열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 것을 통해 훨씬 나은 미래가 펼쳐질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세 가지를 제시하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는데, 어찌보면 반성은 뼈아프고 괴로워도 꼭 필요한 것이고, 대책은 새로운 것보다는 누구나 아는 것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평범한 인생 진리를 다시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이 재량으로 결정하기보다는 규정과 관례에 따라 혹은 윗사람 결정에 따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세 가지 지침이 와닿지 않는 면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블로그를 하며 좋아서 하는 역사공부와 독서모임 관련 글을 올리고 이웃 분들의 댓글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보면, 나부터가 더 많은 지침을 바랐기에 실망했지만, 이 지침이 옳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도... 
 

(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