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25 - 환율전쟁 이야기(2014, 홍익희)

마셜 2024. 1. 1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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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홍익희 교수는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분이다. KOTRA에서 오래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와 역사에 대해 이런 저런 저술을 활발하게 펴내는 것만으로도 교수 저서로는 색다른 가치가 있을 텐데, 그 주제가 유대인, 환율전쟁, 종교 등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쪽이라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 저자를 알게된 건, 전에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세 종교 이야기' 덕분이었다. 사실 오늘 간단히 기록해둘 이 책보다는 '세 종교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고, 새로운 지식도 많이 쌓였었다. 모태신앙인 크리스찬 지인에게도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었을 정도로, 개인적인 만족도는 꽤나 높았다. 

 

  이 책 또한, '환율'이라는 다소 머리 아픈 개념을 다루고 있지만, 조금 풀어서 제목을 다시 붙여보자면,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벌여온 환율조정을 통한 전쟁' 정도가 적당하겠다. 책의 내용은 루스벨트 시절부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르는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변화를 미국의 환율 조정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한국의 IMF에 대해 절절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했고, 미국의 반강제적인 환율 조정에 가장 큰 피해자인 일본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되도록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거대제국 차원에서 화폐를 유통시켰던 로마제국의 역사부터 2010년대 초반 당시 떠오르는 중국이 살짝살짝 엿보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해서도 논하면서 책은 끝난다. 

 

 책의 내용을 목차 중심으로 다시 살펴봐도 이 모든 내용을 어떻게 한 권으로 다룰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방대한데, 실제로 책이 470쪽이 넘을 정도로 두껍다. 그리고 역사, 경제, 정치 등을 넘나들며 거침없이 지적하고 비판한다. 

 그러다 보니 다소 무리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특히, 갑자기 맥락과 별로 상관 없이 '마한과 백제, 로마에 비단을 수출하다'라는 소챕터가 등장하는데, 출처도 없이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검증되거나 합의되지 않은 부분을 '추정된다'라는 식의 표현을 써가며 기술했다. 이 챕터의 후반부는 더욱 과감해져서 경주 황남대총 등 신라고분에서 로만 글라스가 출토되었으니, 중국을 왕래하던 유대 상선이 신라에 온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학설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이 주장이 학계에서 다수설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오히려 중국에 많이 수입된 로만 글라스가 신라에까지 거래될 정도로 교역이 활발하였다 정도가 정확한 추정은 아닐까. 

 이 지적에 대해 멤버 중 한 명은 아무래도 저자 KOTRA 일원으로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어느 정도 국뽕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성향이 어찌되었던 간에 아무리 대중서라 할지라도.. 이런 식의 서술은 역사왜곡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에... 특히 환율 같이 정량지표 변화에 의거 이야기를 풀어야하는 경제(사) 관련 책에서는 특히 지양해야한다고 본다. 

 

 모임 중에는 아무래도 한국경제와 사회를 뒤흔들었던 IMF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난 당시 고3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래서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자기 관점에서라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긴 시간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사회보험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대학교 신입생들끼리 술이라도 한 잔 하려고 삼삼오오 모이면, 그 중 한 명 아버지는 정리해고 당한 상황이었다. 그 암울했던 분위기를 전하면서 속으로는 꼰대라 욕하겠네... 이런 생각도 했지만, 아직도 그 때 대학가까지도 깊게 드리웠던 어두운 경제위기 그림자는 잊을 수가 없다. 

 

 멤버 중 한 명은 IMF 위기에 대한 '러시아 경제 붕괴 목표설'이라는 뻔하면서도 참신한 위기론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사실 역사적 사실로 남은 것은, 그 당시 외환보유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닥이었고, 정부의 위기대응 방식은 너무 별로였다는 점... 그리고 무모할 정도로 진취적이었던 한국 종금사 등 금융자본은 벌써 30년 전에 이미 동남아시아에 진출하여 이자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점... 활발하게 세계에 진출했던 일반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외환위기가 먼저 촉발된 것을 보면, 우연적으로 무엇이 누군가에 의해 겹쳤다기 보다는.... 그저 헤지펀드들이 먹잇감으로 노리기에 한국경제는 너무나 울타리가 낮았고... 상대적으로 먹을 건 너무나 많았다는 설명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경제에 대해서도, (특히 양적완화) 재미있는 얘기들이 오고갔다. 일본이 이렇게 내수중심 경제인지 몰랐다는 멤버도 있었고, 일본의 경직된 문화가 계속되는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그러한 경직된 문화가 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고, 이미 15년 전에도 공무원의 겸직, 즉 투잡을 허용한 것을 들 보면, 우리와는 달리 아날로그, 올드한 일본문화가 어찌보면 느리게 변하기에 외부충격파에도 강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본경제가 오랜기간 위기라고는 하지만, R&D에 있어서 아직 한국이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것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과학 분야에서는 아직 한 명도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한 한국은... 분명 일본 과학에 배울 것이 많다. 

 

 결국 이 책에서 기저에 깔고 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환율과 자유로운 자본이동, 독립적 통화정책은 공존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삼위일체에 균열이 올 때마다 패권국가인 미국은 강제로 개입해서라도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이를 짧고 굵게 설명하는 포스팅이 있어서 링크를 소개해본다. 

 

 

불가능한 삼위일체 이론 : 국제 금융 정책의 삼각 퍼즐

1. 서론 불가능한 삼위일체 이론은 글로벌 금융에서 국제 경제 정책 결정자들이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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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러 가지로 주관적이고, 주장도 일관되지 못하는 등 헛점이 많은 책이지만, 사실 왠만한 교과서적 설명보다도 환율에 대한 입체적 이해도를 높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분명 가치 있는 책이고, 그렇기에 좋은 평도 많이 받고 있다. 2014년 출판된 책이라, 최근의 미중 패권 전쟁 모드를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에세이 읽듯이 오랜기간 실무를 경험했던 전문가의 환율전쟁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한 번 선택해보시길.. 적어도 '플라자 합의'가 얼마나 미국이 힘으로 강제한 말도 안되는 처사였는지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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