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이 이제 대세를 넘어 모든 산업과 교육, 그리고 삶의 필수가 되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류는 늘 편하고 간편한 것을 찾아 진보해 왔고, 이미 인공지능은 계산, 번역, 프로그래밍, 작문을 넘어 추론과 사고에서도 지식인을 위협하는 수준에 올라와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대두 과정에 미중 갈등이 겹쳐지고, 늘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인 한국 또한 앞으로 산업 중심이 될 인공지능에 있어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고, 밥그릇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와 교육계도 이러한 우려를 모른 척하지는 않아서, 많은 지원제도가 발표되었고, 대학들도 학과 신설, 정원 증원 등을 통해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려고 애를 쓰고 있다.
관련해서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와서 스크랩해두었다. 짧은 기사지만, 나름 자료에 근거했고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몇 마디 의견을 더해보려고 한다.
[단독] 학과명 '간판갈이'…유령 AI학과 넘친다
[단독] 학과명 '간판갈이'…유령 AI학과 넘친다, 5년새 9개→146개로 폭증 지원금 따내거나 정원 확대용
www.hankyung.com
핵심은 '국내 대학의 인공지능(AI) 관련 학과 규모가 학생 수 기준으로 5년간 20배 이상 커졌지만, 상당수 대학은 정부 지원금을 타내거나 규제에 묶인 정원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중하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교육 여건이 양적인 팽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지다 보니 취업 시장에서도 AI학과 졸업생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다.' 정도로 보인다.
옳은 말이고 합당한 지적인데, 여전히... 간판이라도 바꾸는 대학을 칭찬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학과개편을 포함한 구조개편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문제이다. 물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기초학문은 온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대학진학률이 높은 한국에서 대학은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든... 무늬만 바꾸는 것이든 간에... 어쨌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잘한 걸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정을호 의원의 자료 조사 취지에 공감하며, 한국경제의 기사 취지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러한 흐름을 외면하고 유의미한 구조개편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서지 못하는 대학도 꽤 많은 게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이다.
감히 새로운 학문의 등장과 정립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너무나 어렵지만, 생각해보면 예전 고등교육이 시작되던 시절에도...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학문이 대학에서 전공으로 급히 자리 잡던 시절에도 이런 문제는 반복되지 않았을까. 해방 후 갑자기 늘어난 대학의 교수 중 적지 않은 수가 박사학위가 없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대학이 팽창한 한국 고도성장기에 대학 신설학과는 교수가 아주 적은 수로 출발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 혹은.. 초반 난관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기사 말미에서는 위성영상처리, 디자인 등을 전공한 비전문가가 AI 수업을 맡고 있다고 꼬집었는데... 물론 AI 전문가(혹은 전공자)가 수업을 해야하는 건 맞지만, 현실적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AI 박사학위 보유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으며, 그중에서도 이미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파탄난 국내대학 연봉 수준에 맞춰 한국행을 택하는 전문가는 더더욱 적음이 근본적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오히려 넓은 범위에서 IT전문가가 열심히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AI를 가르치고 있다면, 척박한 현실에서 정말 최선의 미봉책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관련 학과를 육성하려는 정부 정책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 수 밖에 없고, 꼭 그 학과를 택하지 않아도 다전공, 부전공 등으로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학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야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전제가 양적으로 무리하게 팽창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건 다소 답답하다... 양적팽창, 질적성장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고, 양적팽창조차 동참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이들이 진정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부실한 교육의 질이 힘들어도 양적팽창을 택한 사람들을 겨누는 칼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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