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네이버_프랑스에서 보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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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낭트칙령(1598)과 퐁텐블로칙령(1685)
2. 프랑스대혁명(1789)
3. 나폴레옹전쟁(1803~1815)
4. 드레퓌스 사건(1894)
5. 세계대전(1917, 1939)
6. 프랑스의 산업구조와 자동차
중세부터 현재까지 유럽의 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은 바뀌었지만, 유럽의 중앙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쳐온 점은 분명합니다. EU의 리더로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금의 프랑스 이미지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요?
1. 낭트칙령(1598)과 퐁텐블로칙령(1685)
로마시절부터 전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한 크리스트교는 16세기 초, 심각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을 대표하는 종교로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크리스트교의 부패와 타락, 그로 인한 종교개혁은 뒤에 나올 ‘독일’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만, 서유럽의 중심이자 교회 영향력이 강했던 프랑스도 종교개혁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극심한 분열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프랑스에서 기존 크리스트교(구교 혹은 가톨릭)에서 개종한 신교도(혹은 기독교도)를 흔히 ‘위그노’라 불렀는데, 1562년 가톨릭 신자였던 프랑스 왕족 기즈공이 위그노 신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프랑스 전체의 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신·구간 종교대립이었지만, 왕족-귀족간 세력 다툼 및 왕위계승까지 얽혀 파리를 비롯한 전 지역에서 위그노를 학살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고, 여기에 스페인과 영국이 가세하여 각각 구교와 신교를 후원하면서 국제전 양상을 띄게 됩니다.
무려 30여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1589년 왕위에 오른 앙리 4세가 낭트칙령을 발표함으로서 끝나게 됩니다. 원래 위그노였던 앙리 4세는 왕위에 오른 후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의 지지를 얻고, 낭트칙령을 통해 위그노의 공직 진출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양 교파의 갈등을 진정시킵니다.
또한, 중도파 정치세력인 폴리티크 당과 손잡고, 농업과 수출을 장려하여 재정을 튼튼이 했습니다. 그리고 도로와 교량을 확충하여 훗날 프랑스의 핵심산업이 되는 견직업과 파리 중심 사치품 산업을 육성하여, 절대왕정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이렇게 종교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프랑스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낭트칙령은 역사수업에서도 많이 다뤄지지만, 이와 반대로 다시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여, 프랑스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었던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구교간 갈등을 완화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발전을 도모했던 앙리4세가 가톨릭 광신도에게 암살 된 후, 그 손자였던 루이 14세는 1685년 낭트칙령을 폐지합니다. 기독교를 불법화하고 위그노가 가톨릭을 개종하지 않으면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핵심으로 칙령을 발표하는데, 이러한 퐁텐블로칙령은 낭트칙령으로 프랑스에서 종교 자유가 보장된 지 불과 87년만입니다.
이러한 루이 14세의 종교정책은 종교 문제 혹은 신구교간 국제분쟁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일화된 종교가 프랑스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어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수립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랑스 경제에는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칙령이 발표된 후, 약 80만명의 위그노가 프랑스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전체 인구를 보았을 때, 약 80만명이 엄청난 수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상공업에 종사하거나, 학자, 작가, 교사 등 지식인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그노의 직업 분포는 부의 축적이 상공업 가르침에 반하지 않는다는 유연한 주장을 펼친 당시 신교 칼밸주의 교리에 따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자·지식인·상공업자의 국외 이주는 프랑스 국내 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실제로 시계·열쇠·판유리·공예 등에서 핵심인력이 이탈하면서, 프랑스 상품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종교 자유를 찾아 위그노가 이주한 네델란드, 스위스, 영국, 프로이센, 덴마크 등은 모두 이주해온 위그노가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체 공업 분포에서 프랑스가 기계·전자 등 정밀공업 분야에서 다시 최고자리를 되찾지 못한 긴 역사는 어찌보면 퐁텐블로 칙령이 그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1. 낭트칙령(1598)과 퐁텐블로칙령(1685)
2. 프랑스대혁명(1789)
3. 나폴레옹전쟁(1803~1815)
4. 드레퓌스 사건(1894)
5. 세계대전(1917, 1939)
6. 프랑스의 산업구조와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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