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26. 왠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 로고를 ? – 정몽구 회장의 뚝심경영 이야기 (3)
여러분들은 "바텀 피더(Bottom Feeder)"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바로 이들은 이름 그대로... 바다나 호수의 맨 밑바닥에서 주로 일생을 보내는 물고기들이랍니다. 이름에서 뭔가 좀 안타까운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으시는지요? 바텀피시들은 어찌보면 정말 불쌍한 존재들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은 자기보다 힘센 물고기들에 의해 잡혀 먹일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높은 수면 위로 올라가질 못하고 수면의 밑바닥에서만 평생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위 사진을 한번 보세요. 눈빛과 입모양이... 왠지 좀 불쌍하게 생겼네요. ㅎㅎ 이 이름이 가진 초라한 이미지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경쟁에 뒤쳐진 루저들을 의미할 때도 은근히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 자동차 생산량 3위에 해당하는 현대자동차의 위상에 비하면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1990년대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실제로 바텀피더 취급을 받았습니다. 선두 업체들은 현대자동차가 자신들의 경쟁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처럼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던 1999년... 정몽구 회장은 포니정 정세영 회장과 그의 아들 정몽규 (현 축구협회 회장)로 부터 현대자동차 회장의 자리를 승계받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평생의 숙원 중 하나가 이루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법 합니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아버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황태자 수업이 없었던 그는 철저히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자동차 분야 최고 수장의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그길은 실로 험난했습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그는, 맡은 현대 계열사마다 최고의 실적으로 실력을 입증했고, 결국 현대정공 경영 당시 갤로퍼의 대성공으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마음을 열게 됩니다. 정몽구 회장의 자동차에 대한 실력과 열정을 지켜본 정주영 회장은 결국 동생 정세영 회장과 조카 정몽규 대신 자신의 둘째 아들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승계하도록 허락을 합니다.
현대자동차의 수장이 된 직후 그의 행보는 어떠했을까요? 그는 숙원을 이루었다는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합니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위상과 북미지역 수출 현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가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미국.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현실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북미 지역 시장 곳곳에서 땅에 떨어진 현대자동차의 현실을 너무나 리얼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품질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들로부터 지속적인 리콜이 요구되는 모습을 보았고, 실추된 회사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체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북미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현지 자동차 딜러들의 입김이 매우 세지요. 미국 로컬 지역의 대형 자동차 딜러들은 중견 기업 못지 않은 매출을 자랑하면서 여러 자동차 브랜드 자동차들을 한꺼번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동차 딜러들과 평소에 좋은 관계를 쌓아 놓아야 무난한 차량 판매가 가능하기에, 정몽구 회장도 그들과 특별히 자리를 만들어 간담회를 가지기로 합니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그곳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만 감도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동차 딜러들은 한 목소리로 현대자동차를 성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현대자동차 품질이 너무 조악하여 판매가 어려우니... 저렴한 자동차만 만들지 말고 고품질의 팔릴만한 자동차를 제발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현대자동차의 품질이 떨어져 팔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980년대 중반만해도 현대자동차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1986년에 포니 엑셀을 미국으로 수출하였을 때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고 합니다. 무척 저렴한 차량 가격 대비 꽤 괜찮은 성능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고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는데 성공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년 뒤 1990년대에 이르자 현대 차량들이 하나둘씩 고장나기 시작하면서 품질에 실망한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합니다. 현대자동차는 당시 차량 판매에 급급하여, 차량관련 서비스와 품질 관련한 대비에 소홀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신생 자동차 기업으로서 판매도 어려운 판에 서비스, 정비 분야까지 완벽하게 충족하기란 역부족이었기도 합니다.
그러자 1990년대 현대자동차는 미국 내 언론의 밥이자 동네북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시장 내에 팽배한 현대자동차의 싸구려 이미지를 가지고 놀림의 소재로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를 "내려갈 줄만 아는 대형 썰매"라고 놀린다거나, 어느 토크쇼에서는 “우주비행사를 깜짝 놀라게 하려면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 로고를 붙여주면 된다”는 농담으로 현대자동차를 희화화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바깥에서는 어땠을까요? 한창 진출을 준비하던 유럽에서의 이미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국내에서 베스트세링 모델 중 하나였던 액센트라는 소형차가 있었지요. 유럽 진출 초기였던 2000년대 초반 영국의 BBC 방송은 현대자동차의 액센트란 액시던트(Accident) 즉 사고를 의미하냐고 독설을 날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정말 치욕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정몽구 회장의 머리는 매우 복잡합니다. 몇주전 출국할때와의 상황과는 180도 다른 침울한 분위기에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자... 현대자동차의 실태를 해외에서 확인한 그는 이러한 상황에 맞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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