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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23. 5%룰이 살렸다! 현대그룹의 고난 -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10)

꿈꾸는 차고 2024. 4. 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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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23. 5%룰이 살렸다! 현대그룹의 고난 –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10)
 
혹시 여러분들은 "5% 룰"에 대해 아시나요? 5%룰이란 한 기업의 주식을 5%이상 보유하게 될 때, 5일 이내에 그 사유와 보유량에 대해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주식대량보유상황보고제도"라 하여 해당 주식을  5%이상 보유하게 될 때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보유 비율이 1% 이상 변동된 경우, 혹은 보유 목적을 변경한 이후에도 5일 이내에 반드시 보고하여야만 합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이제도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적대적 M&A를 위한 음성적 주식매집이나 기업 경영권에 대한 불공정한 침탈을 방지하고, 증권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여 일반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일반인들이야 ㅎㅎ 이를 어길 기회가 흔치 않겠지만, 대기업 집단이나 고액 투자자들이 만약 일정비율 이상의 주식 취득 그리고 변동에 대해서 신속한 보고와 공시를 어길 경우엔 검찰에 고발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5%룰 이미지 (출처 : 뉴스웰)

 
 
 
 
그런데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이 바로 이 5%룰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과연 그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지난 2000년도 왕자의 난 결과,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2대 총수에 등극하게 되고 그는 그룹의 핵심인 건설, 전자 부문을,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부문을 맡게 됩니다. 즉 정몽헌 회장은 현대 적통의 상징 현대건설, 캐시카우 현대상선, 현대전자 등 26개의 계열사에 그룹 매출만 연 80조원에 이르는 공룡 현대그룹을 차지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비슷한 시기, 동생 정몽준 회장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을, 셋째 형님인 정몽근 회장은 현대백화점을 맡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형님인 정몽구 회장이 맡게 된 현대자동차와, 현대서비스 등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는 사실 20여년 전  당시로서는 미래에 대한 성장이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범현대가의 기업 로고들 (출처 : 더 팩트)

 
 
 


하지만 앞편에서 간략하게 설명한대로, 2000년도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이 거머쥔 승자의 기쁨은... 사실 잠깐이었을 뿐입니다. 그들 앞에는 한번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각종 난관과 고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별세하고 나서는 정말 야속하리만치 겉잡을 수 없는 파도, 아니 쓰나미 수준의 악재들이 현대그룹에 몰아닥칩니다. 무엇보다 대북 불법송금 사건은 정몽헌 회장에게 직격타가 되어 돌아왔고, 이와 더불어  2000~2001년 사이 국내외 시장의 상황은 현대그룹에게 있어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쓰나미 이미지 (출처 : Freepik)

 

 



한편 2003년 정몽헌 회장의 사망 이후에 현대그룹은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이끌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녀가 현대그룹을 제대로 추스를 시간도 없이 다른 외부세력들로부터 끊임없는 경영권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영권 분쟁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회사의 소유권을 다투는 싸움이죠. 경영권을 다투는 양측은 최고의 변호인단과 두뇌가 명석한 인텔리 직원들을 전면에 내세워 꽤 긴기간 동안 전쟁을 벌입니다. 저는 이런한 경영권 분쟁이 바로 줄다리기 시합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영권 분쟁 시 양측이 한동안 물밑으로 경쟁하다가 결국 최후의 승패는 오직 조금이라도 보유주식 비율이 많은 곳으로 결정이 나기 때문입니다.

다들 "오징어게임"의 줄다리기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오징어게임에서 양편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기게 되죠.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 뒤로 움직이다가 결국은 단 1%의 미세한 힘차이 때문에 결판이 나게 됩니다. 이긴 팀은 환호하게 되는 반면, 진 팀은 그동안의 고생과 수고에 대해서 전혀 보상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기업 바깥 외부세력과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서로 주식 매입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때 주식 매수물량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주가가 오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소액 주주들로서는 이런 호재가 반가울 수도 있겠지만, 기업 소유주들에게는 기업 경영권이 왔다갔다하는 필사적인 상황이기에... 결판이 날때까지는 정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징어게임 줄다리기 장면 (출처 : 넷플릭스, 유튜브)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있어서 그 드라마의 첫 주인공은 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 정상영 KCC 회장이었습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 중 유일한 생존자로서 그는 현대 가문에 대한 강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범 현대가 재결집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유지에 불만을 가지고서 현대그룹의 현대엘레베이터 지분확보를 통해 이를 막으려고 합니다. 바로 현대그룹을 다시 정씨 가문 안으로 찾아오겠다는 다짐 때문이었습니다. 일명 "숙부의 난"입니다. 처음에 KCC그룹은 외국계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한국프랜지와 금강종합건설, 울산화학, 현대백화점 등 범현대가 9곳과 협의하여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2%를 매입하게 되는데... 외형상 그의 전략은 마치 성공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정상영 회장 VS. 현정은 회장 (출처 : 인사이트, 연합뉴스)

 

 
하지만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당시 현정은 회장은 일반 공모로 천만주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국민주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맞서게 됩니다. 현대엘레베이터를 국민기업화하여 주식의 매입 기회를 국민들에게 더 폭넓게 제공할 것을 그녀가 천명하자 여론은 현정은 회장에게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법원이 KCC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며 무산됩니다.
 
그러나... KCC의 공격은 어이없게도 5% 룰 즉 5일 이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에 보고하도록 한 제도의 위반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2004년 2월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KCC가 주식 대량 보유변동 보고 의무를 위반하여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매입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0.78%(148만1천855주)를 모두 처분하도록 명령하고 정상영 회장과 KCC를 검찰에 고발합니다. 결국 2004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의 주총 표대결에서 현정은 회장 측이 완승하면서 약 8개월 만에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금융감독원 (출처 : 디지털 에셋)

 
 
 
 
이후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2006년에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당시 현대그룹의 돈줄이자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현대상선 지분을 일시에 26.68% 인수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현대중공업 측은 외국인의 적대적 M&A를 막고 투자 목적으로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혔으나 누가 보기에도 이것은 현대그룹의 경영권 확보와 현대건설의 인수를 위한 작전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정은 회장의 현대상선 우호지분은 40%, 현대중공업은 우호 세력인 KCC를 합쳐 32.9%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당시 잃어버린 현대건설을 되찾기 위해 벼르고 있었던 현대그룹은 그룹의 중심이었던 현대상선을 이용하여 인수자금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바로 현대중공업에게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이른바 "시동생의 난"입니다.이로 인해 한동안 양측에서 신경전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몽준 회장의 상황이 복잡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자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가의 잦은 경영권 다툼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신경쓰이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년뒤 그는 한나라당에 입당합니다. 그리고 무소속 울산 5선 의원 이미지를 벗고, 서울 지역구를 목표로 총선을 준비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다시한번 대권에 도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당시 여론과 현정은 회장의 우호지분에 밀려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했고 현정은 회장은 가까스로 현대그룹을 위기에서 지켜냅니다. 
 
당시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 사내 통신망에 글을 띄우고 속상한 심경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사망 뒤에 홀로 현대그룹을 맡아 이끌게 되었던 자신에게 친족인 정상영 회장과 정몽준 회장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고 하네요. 본인이 정씨 집안에 시집을 오게 된 것도 30년이 넘었고 자신의 자녀들도 모두 정몽헌 회장의 자식이며 정씨 가문인데, 어째서 정씨 적통문제가 발생해야 되냐고요...


  

정몽준 회장 VS. 현정은 회장 (출처 : 일요신문, 월요신문)

 


그러면 현정은 회장이 정몽준 회장과 한판 싸움을 벌이게 된 현대상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대상선은 정주영 회장이 그룹의 수출품들을 해외에 나르기 위해 시작한 기업이죠.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따라 한진해운에 이어 대한민국 2대 선사로서 40여년을 군림한 간판 선사였습니다. 해외에 나갔을 때 그곳에서 현대로고가 적힌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봐도 그렇게 반갑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지난 2016년, 세계 해운업의 침체가 한국을 강타하고... 그동안 부실경영을 해온 결과에 따른 워크아웃 때문에... 현대그룹은 눈물을 머금고 분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 현정은 회장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당시 현대그룹의 매출을 크게 담당하던 간판기업을 떼어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인 현영원 회장이 한때 현대상선을 경영했었던 이력도 있었기에 그녀는 현대상선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사재 300억원을 출연하여 현대상선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나... 현대상선이 워낙 빚이 많은터라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현대상선의 사명이 HMM으로 변경되었고, 이제 그 기업은 범현대가와는 관련이 없는 산업은행을 중심으로한 채권단이 주요 주주입니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출처 : 서울파이낸스)

 
 

한편 그룹의 적통 현대건설도 현대그룹으로부터 속절없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겪게됩니다. 현대그룹이 지속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계속 맞이하자 금융권이 현대상선으로부터 약 4150억원을 단기에 회수해버립니다. 이때문에 결국 현대건설은 불과 260억원의 어음조차 막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곧이어 채권단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현대그룹은 그룹의 캐시카우로 군림하던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상선, 현대종합상사 모두... 품에서 떠나게 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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