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강국의 대표 브랜드 WADITO

HYUNDAI 25. 때로는 정반대가 옳은 길이 될 수도 ? – 정몽구 회장의 뚝심경영 이야기 (2)

꿈꾸는 차고 2024. 4. 30. 08:23
728x90
반응형

HYUNDAI 25.  때로는 정반대가 옳은 길이 될 수도 ? – 정몽구 회장의 뚝심경영 이야기 (2)

 

지난 글에서 저는 최고 경영자들의 삶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는데요, 찾아보니 비슷하게 생각한 분들이 꽤 있네요. 샌프란시스코 팔로알토 지역을 베이스로 세계적 벤처투자업체인 "소셜캐피털"을 이끌고 있는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CEO의 발언을 공유합니다. 특히 벤처캐피털 업체들은 돈이 될만한 투자처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 헤메는 것이 주요 업무일텐데요.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투자를 결정할 때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최고경영자(CEO)의 ‘회복력’이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하루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 기분이다가 다음날이면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들이 반복된다. 이 같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능력이 중요하다.” (출처 : 모바일 한경)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출처 : 한국경제)

 

 

 

 

그가 정말 최고경영자들의 삶을 정확히 짚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매출과 외형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그 기업을 이끄는 리더의 실력 뿐만아니라 멘탈적인 부분도 모두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투자처를 정한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투자를 진행해서 그런지,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리틀 버핏" 이라는 별명을 지닌 억만장자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수백만명의 X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며, 본인의 유튜브 팟케스트에는 당대의 명사들이 총출동하여 그와 대담을 벌입니다. 게다가 그는 샌프란시스코 골든스테트 워리어스 프로농구팀의 지분을 소유한 현직 이사이기도 하며, 페이스북 초창기에 부사장으로 재직한 경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배경 속에서 그 스스로가 최고경영자의 삶을 살아왔기에, 그의 발언은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역시도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피하진 못할 것 같은데요... 하루에 클릭 하나로 수억달러의 자금이 거래되는 변동성 큰 금융 시장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날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실력 뿐만아니라 멘탈도 엄청난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수십만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수많은 자회사의 사업들을 한꺼번에 실행해야하는 대기업 회장의 스트레스 지수는 좀더 심하지 않을까요? 단 한번 판단의 실수가 큰 위기를 야기하는 상황이 매일같이 지속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엄청난 중압감이 온몸을 짓누를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장기적인 정책을 세우고 흔들림없이 수행할 수 있으려면 그 중압감 먼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중압감에 압박받는 이미지 (출처 : 코리안 라이프)

 

 



현대자동차를 새롭게 이끌게 된 정몽구 회장도 초창기에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렸을텐데요, 그러나 좌초되어가는 기업을 살려내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이 개인적인 중압감을 훨씬 앞질러버린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기아, 대우, 쌍용 등 국내시장에서 경쟁하던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처참하게 파산했고, 극심한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회생이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는 시기에... 현대자동차를 반드시 살려내야만 하는 의무가 그에게 있었으니까요. 이때 정몽구 회장은 누구보다도 냉철한 분석이 절실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분석의 결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앞지른 것이었습니다. 앞편 글의 말미에서 잠시 언급했다시피 2000년대 들어서 정몽구 회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를 축소하는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일단 기존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정비한 정몽구 회장은 이제 글로벌 생산판매 네트워크를 차례대로 구축하기 시작합니다.그동안 뛰어난 경영성과를 냈어도 아버지로부터 그에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아픔을 한풀이라도 하듯... 현대그룹으로부터 갓 독립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대규모 투자는 시장의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속도전의 끝판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거의 매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지요.

 

2005년 미국 엘라베마주 현대자동차 공장 준공, 2010년 미국 조지아 주 기아자동차 공장 준공 그리고 세계 15위권의 현대제철을 출범시켜 일관제철소를 만들어냅니다. 나중에 관련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제 자동차 산업의 원료인 제강을 타 제철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생산하겠다는 꿈을 이뤄낸 것이지요. 이러한 의지로 출범한 현대제철은 17만명이 넘는 고용창출과 매년 1000만톤의 철강 수입 대체로 10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절감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2년 뒤 2012년에는 브라질 자동차 공장을 준공하며... 파죽지세로 글로벌 생산판매 네트워크를 늘려갑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미국 생산공장 현황 (출처 : 연합뉴스)


 
 

정몽구 회장은 잃었던 기업들을 다시 되찾는데도 열성적이었습니다. 여러분 현대건설 잘 아시죠? 최근 세대들에게는 현대 힐스테이트 혹은 서울 강남 개포동의 디에이치 아너힐즈 등 프리미엄 하이브랜드 아파트로 더 유명할텐데요,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일부를 수주하여 공사하고 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가진 대한민국 탑 건설회사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현대건설은 과거 고 정주영 회장이 "중동 신화"를 써내려간 현대그룹의 상징적 회사이기도 했죠. 그는 현대건설을 이끌고 1976년 20세기 최대의 역사라고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을 건설하며 중동 붐을 이끌어 당시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했었습니다. 이처럼 정주영 회장의 유산이 살아 숨쉬는 현대건설은 안타깝게도  지난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 등의 여파로 부도 위기에 처했고 4차례에 걸친 자구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5월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가서 2006년 5월에서야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운명을 겪습니다.  

 

 

 

현대건설이 참여중인 사우디아라비아 170킬로미터 선형도시 네옴시티 더라인 조감도 (출처 : 연합뉴스)

 

 

 

 

이 현대건설을 두고 2011년 다시 한번 형제의 전쟁이 불붙었습니다. 한국산업은행의 관리를 받고 있던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입니다.  이를 놓고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 그룹 사이에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처음에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우선협상자 대상이 되었으나 자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결국 현대자동차그룹이 두 회사를 얻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현대가의 서열은 자연스럽게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기울며 정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그룹의 총 본산이자 현대건설의 본사로 이용되던 계동 사옥 역시 되찾아옵니다. 이후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라는 이름에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개명하면서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정몽구 회장은 1999년 3월부터 임기를 시작하여 2020년 10월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21년 동안 전력을 다해 질주했습니다. 2000년 9월 계열분리 당시 10개 계열사에 자산 34조원의 수준이던 현대자동차그룹은 20년만에 53개 계열사, 자산 246조원으로 팽창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동차, 철강, 건설의 삼각 편대를 완성하고 현대가의 장자 적통까지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정의선 회장의 지휘 하에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022년, 그 누구도 꿈꾸어보지 못한 글로벌 판매량 기준 세계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2022년 기준 전세계 완성차 그룹 판매량 순위 (출처 : 한겨레)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얼어붙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20여년 만에 이러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준 자동차 회사는 정말 현대자동차그룹이 유일무이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9년 세계 20위 권의 현대자동차를 세계 5강에 안착시키고 결국 3위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은 뚝심과 지혜를 겸비한 정몽구 회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브랜드 파워가 땅에 떨어진 현대기아 자동차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품질 개선으로 기반과 기초 체력을 확고하게 다진 뒤 브랜드를 강화하는 매직을 선보였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최악의 경영 시기와 타이밍에 최적의 리더를 갖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던 것이죠. 정몽구 회장이 성공의 신화를 어떻게 써내려갔는지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자... 그럼 정주영 회장의 여러 아들 중 이제 마지막 순서로 정몽구 회장의 리더쉽과 뚝심경영 그리고 그의 생애에 대해 몇차례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경영 주요 연혁 (출처 : 조선일보)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