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더플라자호텔에 결혼식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하는게 참으로 오랜만이기도 하고, 화려한 예식홀도 인상적, 스몰웨딩도 이제는 익숙해진 건지.. 삼삼오오 지인들끼리 앉은 테이블 분위기도 모두 좋았다.
테이블에 함께 앉은 나이 많은 어르신은 처음 뵙지만, 걸어온 길 자체가 화려하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기에, 자연스럽게 가벼운 한 마디 한 마디에도 귀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들려온 이야기. 옆 테이블에 한참 후배와 편하게 나누는 이야기였다.
"여기 전망이 이렇게 좋았나?"
"예. 청와대가 이렇게 잘 보이는지 몰랐습니다."
"저 좋은 데 그냥 들어가 일하지. 뭐 얼마나 오래 일한다고.."
"하하.. 그렇지요."
대번에 난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추진에 관한 얘기구나. 알아차렸고.. 쉽게 짐작되는 두 인생선배의 정치적 성향과 너무나 다른, 툭 튀어나온 속마음 몇 마디에... 그저 쓴웃음이 나왔다.
대통령실 이전 비용 쟁점…尹당선인 "496억원" vs 민주 "1조원" (naver.com)
당선인은 꼭 이사를 가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어찌보면 실제 대통령 보다 더 강한 위세를 보여주는 당선인. 당연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지면 될 것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슨 음모가 있거나, 뭐에 홀렸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뭐든 할 수 있으니, 그 뭐든 중 이사를 택한 것 뿐이지 뭐. 다만, 이제 사회생활에 지쳐가는 탓인지, 문득 생각이 났다. 돈은 어디서 나서?
이사비용이 496억원이냐, 1조원이냐를 가지고 말도 안되는 갭을 두고 언쟁중인 두 정당. 둘다 틀렸겠지. 두 나라 전쟁을 하면서 전사자를 발표하면 원래 실제 역사는 그 두 숫자 중간 즈음에서 기록되는 법이니까. 다만, 496억원은 작은 돈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OECD 가입 선진국을 이끌 수장답게 스케일이 큰 탓이겠지만, 난 496억원이 너무나 아깝다.
아니 사실 49.6억원이어도 아까웠을 것 같다.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구두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산절감에 앞장섰고, 그 결과 국회에 예산을 요청할 일 자체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제도와 정치지형이 너무나 다른이야기지만, 당선인 신분으로 예비비를 끌어서, 이사를 한다. 여전히 난 이사비용이 아깝다.
이전비 496억원? 하루만에 1200억 더 보탠 인수위 (naver.com)
이미 그 자체로 역사인데...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본인은 시민 품인 용산에서 일을 하시겠다는데... 이미 청와대는 대한민국 건국 후 계속되어온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거처이고, 상징인데... 이런 모호한 이유로 이 모든 걸 바꾸겠다니.. 아쉽다. 민주주의 대통령제 국가 대한민국이지만, 국가통수권자가 사는 집무실의 전통이 이렇게 허무하게 바뀔 수 있다니. 거의 놀랍기까지 하다.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70년이 넘었고, 그 기간 늘 대통령을 상징해온 청와대는 이제 이렇게 대통령 집무실로서의 역할을 끝내게 되었다.
역사적 전통의 단절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대통령이 머무는 곳은 '청와대'라는 것은 관습헌법이 아닌지 따져보고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정은 된 일. 잘 되길 바랄 수 밖에 없겠지.
그리고 그 와중에도 비용은 되도록 절감하고, 효과는 극대화해서, 정말 의도대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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