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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야구 - 그 7~80년대생 야구선수들 이야기 1편

마셜 2022. 8. 2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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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jtbc)

 

 8월 29일 기준 최근 시청률 2.5%,  시청률이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지만 야구팬들의 애정은 여전히 높은 듯 하다. JTBC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야구예능 '최강야구'의 현재 성적표다. 

 어쨌든 한 때 야구보는 것을 누구보다 즐겨했던 나로서, 야구예능이 종편에서 절찬리에 상영중인 것은 반가운 일. OTT에서 보기엔 과분할 정도로 경기 퀄리티라서 더욱 좋았다. 

 

 내가 누구보다 야구 보는 것을 즐기던 시절, 그 시절을 즐겁게 또는 열받게 해주었던 7~80년생 선수들이  이제는 진정한 아재가 되어, 고등학생/대학생에게 패배하지 않고자 진땀을 흘리는 그 쫄깃함. 다시는 진지하게 야구하는 걸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은퇴선수를 그라운드에서 보는 것도 반갑지만, 그 한 명 한 명 스토리가 떠올라 어린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갈수록 야구에 대한 기억도 휘발될 것은 뻔한 일... 최강야구에서 만난 반가운 선수에 대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기록에 남겨놓고자 한다. 다만, 이는 모두 기억에 의존한 것으로서, 출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정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

 

1. 감독 이승엽(1루수, 경북고)

 라이언킹 이승엽. 그는 사실 한양대로 진학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한양대와 삼성라이온즈가 간 스카웃 분쟁을 일으킬 정도로 출중했던 실력의 좌완투수 유망주. 스타급 유망주들은 대거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현재와 달리 당시 대학-프로간 스카웃 분쟁은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했고... 이승엽은 수능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점수로 최저점수보다 낮은 성적을 기록하며, 대학입학자격을 날려버렸다. 이 성적이 운동만 했던 이승엽의 학력인지, 아니면 프로로 가고 싶었던 고교생의 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로 인해 이승엽은 삼성라이온즈에 입단에 성공했고.. 삼성을 넘어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삼성의 10년을 책임질 좌완유망주였던 이승엽은 한국야구를 평정했다. 아니 아시아권에 기억될 야구선수가 되었다. 단, 삼성이 고대했던 좌완투수가 아니라, 1루수 거포로서...

 

2. 박용택(외야수, 휘문고-고려대)

 호타준족 LG맨 박용택, 긴 시간 LG에서만 프로생활을 하고, FA에서도 팀에 남기 위해 큰 양보를 한 진정한 원클럽맨이다. 많은 야구팬이 기억하는 박용택이지만, TMI에 가까운 재밌는 사실도 많다. 

 첫번째, 도루왕이자 올스타홈런더비 우승자 박용택. 노장이 되어 은퇴할 즈음에는 기동력이 많이 떨어져 도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시즌 도루왕을 차지할 정도로 발도 빨랐고, 고려대학교 4번타자 출신에, KBO올스타 홈런더비에서 우승경력이 있을 정도로 장타력도 겸비했던 선수다. KBO역사에서 도루왕과 올스타홈런더비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는 선수가 언제쯤 다시 나오려나? 짧은 시일 안에는 힘들 것 같다. 

 두번째, 턱관절로 인한 군면제. 하지만 다들 기억하기 힘들겠지만, WBC 2006 멤버였기에, (대타 이외 출전기회가 거의 없었죠) 원래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는... 억울택...

 세번째, 신인시절은 3할을 못치던 유망주 외야수에 불과했다는 사실. 이병규가 LG외야를 호령하던 시절, 개막엔트리에 들지 못했던 것 뿐만 아니라, 2002년에 데뷔해서, 2009년에 3할을 기록할 때까지 3할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 사실은 프로기준으로 보면 부단히 노력하여 타격왕에 올랐던 선수이지, 젊은 시절부터 리그를 평정한 타격왕은 아니었다. 

 

3. 정성훈(3루수, 광주일고)

 안정적인 3루 수비와 번뜩이는 타격을 동시에 갖추었던.. 특히 타격에서는 팀배팅부터 장타, 출루까지 못하는게 없었던 정성훈. 최강야구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뽐내고 있는데, 특이한 타구폼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별명. 그는 한때 야구팬들에게 '돌x이'라 불리웠다. 이 무슨 망언이냐 하겠지만, 지금보다는 일부 해설들이 만담식으로 풀어놓는 이야기가 선을 넘나들었던 시절.. 지금은 높은 자리에 계신 해설위원 분께서 직접 중계 중 육성으로 하신 발언이라 신뢰가 간다. 

 단, 그 시절 현대팬들, LG팬들은 수준 높은 그의 플레이를 사랑했고, 그 특이한 별명조차 애정을 담아 불렀다. 말년에는 예전 같지 않은 반사신경에 1루로 전향... 거포 후배들에게 밀려... 백업으로 쓸쓸히 은퇴했지만, 아무리 강한 투수여도, 한 번 작정하고 타석에 들어서면 반드시 강한 타구를 날려줄 것만 같은 그런 든든한 선수였다. 

 

4. 이택근(외야수, 경남상고-고려대)

 국가대표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택근은 프로 입단 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골든글러브 중견수로서 이름을 날리며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최강야구'에서도 말했든 포수로서 프라이드를 가질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가 프로에 입단했을 당시, 그는 포수 포지션을 지키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현대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은 모든 걸 두루 갖춘 이택근 선수의 포수 수비가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영입을 주도했던 김용휘 단장 앞에서 '요즘은 아무나 국가대표 하나보다'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은 후, 전지훈련 멤버에서도 빼버렸는데.. 김 단장 회고에 따른 당시 현대가 딱히 포수가 급히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감독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단장 입장에서 양보와 설득을 섞어서, '전지훈련에 1명을 더 데려갈 예산을 확보할 테니, 이택근을 데려가자'고 했고, 이를 받아들였다는데... 선수 보는 눈이 뛰어났던 김용휘 단장의 끈질긴 설득이 아니었다면, 이택근 선수의 화려한 커리어는 그 출발이 순탄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택근은 고교시절부터 뛰어난 포수로 유명했는데, 고교대회 부산지역 예선시합을 할 때에는 당시 경남상고 주전포수였던 이택근만 지치게 하면된다는 차원에서, 타석에 들어서면, 일부러 와일드피칭으로 1루에 전력질주 시키고, 계속 공을 빠트려서 3루까지 쉴 새 없이 뛰게 만들어 지치게 했다고 하는 풍문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반강제로 잠시 LG에서 선수생활응 한 것 이외에 원클럽맨인 이택근은 유니콘스-히어로즈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실제로 '최강야구' 처음 자기소개에서도 유일하게 본인을 키움이나, 넥센 구단명을 빼고 '히어로즈'에서 선수생활을 했다고 소개했는데... 최근 몇 년간 부침을 겪었던 팀 사정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야구팬으로서 이택근이 영원한 히어로즈맨으로 기억되고 싶은 바램을 표출한 것으로 보였다. 

 

5. 정근우(내야수, 부산고-고려대)

 작은 체구로 프로야구 최고 2루수 자리를 오랫동안 수성했던 정근우. 매서운 타격도 일품이었지만, 눈빛만큼이나 저돌적인 베이스런닝이나, 진정으로 악마 호칭이 딱 맞게 보였던 2루수 수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 흑역사라면, 거친 2루 수비로 악명이 높았다는 건데, 주자 도루시 2루수로서 커버를 들어가면, 스파이크 징을 세우는 모션으로 주자가 위협감을 느끼도록 수비하는 경우가 유독 많았고, 벌써 2007년이지만, 한국시리즈에서 2루를 지나가는 주자를 커버하면서 다리를 잡아 이를 방해하면서, 당시 인기검색어에 오른 적이 있었다. 

 평생 먹을 욕을 그 시절 다 먹은 정근우 선수, 그 후에는 그 정도 오해를 살만한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이제 노장이 되면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도 많지 않지만, 여전히 KBO에서 '악마'처럼 상대팀을 괴롭히는 선수 1명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정근우'를 꼽을 것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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