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쯤이었던가? TV 예능 프로에서 우지원 해설위원이 '난 평생 농구로 일본에 져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랬다. 이충희-허재 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장훈-현주엽 시절까지만 해도 늘 중국을 걱정했지, 일본에게 패할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최신 FIBA의 아시아 국가랭킹은 매우 낯설다. 사실상 아시아권 농구라 보기 힘든 호주와 뉴질랜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시아권 3위가 일본이라니, 그리고 이란 다음에 위치한 레바논, 중국, 요르단, 필리핀, 그다음으로 가야 한국을 찾을 수 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거뒀던 처참한 성적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냉정한 한국 농구 수준이 맞다. 최근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한국과 두 차례 평가전을 치뤘던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농구는 별로 배울 게 없으니 다른 나라와 평가전을 잡아달라고 했다는 후문도... 이 처참한 랭킹에 비하면 별로 화가 나지 않을 수준이다.
이 정도가 한국농구 현실인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다시 랭킹을 들여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이렇게 아시아 정상권까지 올라선 것일까. 마침 그 궁금증을 따라가본 기사가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일본 특유의 꼼꼼한 검토와 차근차근 추진하는 준비과정이 잘 드러나는 분석...
그 이름만으로도 부러운 '슬램덩크 장학금'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유망주들의 개인적 도전(여준석, 이현중)이 아니면, 일본리그 진출 정도가 거의 전부인 한국 현실을 생각해 보면, 20명 정도의 해외유학생을 미국, 독일 등지로 파견하고 있는 일본농구가 앞서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초현실 같은 이야기는 빼더라도 3점 슛 위주로 일본선수들 장점을 관리하고, 외국인 지도자를 적극 초빙하여, 다양한 스타일을 배우려 하는 모습은 한국은 왜 못하나...라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당장 재린 스티븐슨이나, 디드릭 로슨의 국대 선발에 대해서도 적극적 모습을 보이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농구협회를 생각해보면, 적극적 외국인 코치 초청이나, 한국농구 장점 관리 등은 꿈과 같은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북산고의 돌격대장, 도내 넘버원 가드를 향해 성장해가는 송태섭,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타입의 선수다. 180cm가 안 되는 선수가 KBL에서 뛴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짧은 시간 출전해 슈터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였고, 한국농구는 여전히 1:1 매치업에서의 신장 우위-열위를 예민하게 따지고 이를 게임에 반영한다.
농구에서 신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농구팬이 있을까. 하지만, 대다수 청소년 농구팬들인 180cm 이하의 키일텐데, 그런 아이들도 가슴이 설렐 수 있는, 농구판에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 수 있는... 그런 캐릭터라는 점에서 송태섭은 더 소중한데, 놀랍게도 일본 프로리그 연봉킹 도가시 유키 신장이 불과 167cm다. 그야말로 리얼 송태섭이 프로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셈. 농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셈이다.
기사 내용 중 일본이 부카츠(部活, 방과후 부활동)를 통해 많은 청소년이 농구를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그저 슬퍼질 따름이다. 대통령이 누구나 좋은 대학을 가게 해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교육부 엘리트들이 대입정책을 직접 관리하며 국가 중대사로 대하는 나라.. 이 대학 진학 열풍 덕에 중학생들도 12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리는데 방과 후 활동으로 농구를 접하는 아이들을 늘리는 게 가능한 일일까.
돌고돌아 서글픈 자조로 얘기가 끝이 났지만, 현실 안에서는 비판만 하는 사람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비판을 수용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셈이다. 농구협회와 농구연맹의 사이가 구체적으로 어떤지.. 국가대표팀은 그분들에게 어떤 정도 중요도를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일보에서 정성 들여 작성한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이 앞서가며 시행했던 외국인 코치 적극 활용이나, 해외 유망주 지원 등은 힘들어도 바로 시행했으면 좋겠다. 마침 여준석, 이현중, 재린 스티븐슨이라는 훌륭한 재원이 자력으로 KBL보다 강한 리그에 도전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스토리를 잘 관리하고 부수적 지원을 해주는 것은 큰 예산이 없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늘 익숙한 분들이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 돌아가면서 맡고, 국가대표팀 감독도 돌아가면서 맡는... 기시감 드는 풍경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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