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감독 경질로부터 시작된 난장판, 팀은 연승을 거두고 있지만, 엉망진창으로 악화되는 여론과 팬심을 견디다 못해 배구단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꼼꼼히 읽어보니, 참 공들여 작성된 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문장이 참 유려하다. 한 문장 문장이 다소 길긴 하지만, 잘 이해가 되도록 선명하게 뜻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글 중간에 '구두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배구팬들의 어휘력을 확장시켜 주었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담백하게 팬들이 주장하는 바를 인정했다.
"핑크스파이더스의 주인은 흥국생명이라는 기업이 아니라 경기를 뛰는 선수들과 이들을 아껴주시는 팬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겠다"
글쎄, 아무리 구단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프로스포츠단의 주인이 선수들은 아니다. 어쨌든 프로스포츠단의 기본형태는 주식회사, 주주가 있고 그 주주가 제대로 소유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흥국생명 배구단의 주주 구성은 모르겠지만, 당연히 선수들은 아닐 터... 선수가 주인이려면 조직형태가 최소한 '조합'은 되었어야지. 어느 프로스포츠단도 선수가 주인일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사과문을 작성한 이유, 아마도 속마음은 이 정도 되었겠지.
"구단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선수'들의 의사를 절대 존중하면서, 구단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도록 팬들의 의견 또한 적극적으로 참고하겠다."
어쨌든 대기업 소유 프로스포츠단에서 '주인은 선수'라는 신박한 주장까지 한 것을 보면,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긴 한 모양이다. 누가 감독으로 오던, 아니면 지금처럼 '감독의 감독의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치든 간에 더 이상 무리한 개입을 안 하겠다는 의지는 확실하니, 그나마 해결가능성이 보여 배구팬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구단 고위층(단장 등)은 프로스포츠단 운영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하나... 영화 '머니볼(2011)'을 보면, MLB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은 자신이 주목한 저평가된 선수(예시, 1루수 스캇 해티버그)를 감독(당시 아트 하우)이 기용하지 않자, 직접 찾아와 1루수로 기용할 것을 이야기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장은 감독을 더 이상 압박하는 대신, 다른 1루수 자원들을 트레이드시켜 버린다. 결국 다른 대체자원이 없어진 감독은 어쩔 수 없이 해티버그를 기용하게 되고 그는 크게 활약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앞장선다.
시사점 두 가지
1.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에 대해 단장이 직접 지시를 내릴 수는 없다. (천하의 빌리빈도 그렇게는 못했다)
2. 하지만, 단장은 감독과 상의 없이 선수를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한국 KOVO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결국 흥국생명의 이 번 행보가 첫 단추를 크게 잘못 낀 것임은 어떤 각도로도 분명해 보인다. 김연경 선수의 어두운 표정이 눈에 띄는 요즘. 더 이상은 구단 운영에서 '기행'을 택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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