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은 적이 거의 없다. 지시를 받은 적은 많다. 물론 좋아서 쓴 글도 꽤 있다. 이 블로그에 쓴 글도 그저 내가 좋아서 쓴 것들이다. 그 낯섦 때문인지, 이미 포스팅했던 글을 요약해서 정리하는 것도 꽤 힘들었다. 포스팅 3개를 700자로 요약하려니 쉽지 않은 것도 당연하고, 아무리 엄청난 완성도를 요구하는 글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요청이기에 조금 더 부담이 되었다. 어쨌든 마감날은 다가오고, 계속 전에 썼던 포스팅을 보고 또 보면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과감하게 혹은 아... 내가 이런 글을 썼구나 생각을 하면서 글을 줄이고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물은 100%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분량도 많이 초과되어서, 편집자에게 고민을 안기지 않았나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어쨌든 제출했기에 양을 더 줄여야 한다는 고민은 내일 이어나가기로 하고 오늘은 결과물을 이 곳에 남겨두고자 한다.
먼저 전에 썼던 포스팅은 다음과 같다.
힘들게 줄이고 나니 조금은 일목요연해진 것 같아 그래도 보람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정부 혹은 최소한 독립운동단체가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기 위해서는 어떤 실질적 활동을 했고,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봐야 한다. 한인애국단 등 가시적인 의거가 있었고, 의미 있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으며, 해방 직전 광복군 활동까지 이어졌지만, 이러한 활동이 해방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별개 문제이다. 이렇게 다소 냉소적 시각을 가진 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방문했다. 역사적 가치와 민족해방에 대한 기여 사이의 간극을 조금 좁힐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기념관에 들어서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간극 사이에서 잔잔한 울림을 느꼈다. 4층, 적당한 크기 기념관을 돌아보기에 충분치 않았던 두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임시정부에 대해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본 것도 평챙 처음이다. 사실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긴 시간에 걸쳐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적은 별로 없다. 대학원 과제를 위해 밤을 새운 적도 있지만, 그 쫓기는 듯한 사투가 혼자 생각에 잠기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층별로 ‘군주의 날’에서 출발해서 ‘정부’까지 다다르는 여정은 잘 알려진 것처럼 온전히 임시정부의 힘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국민의 나라와 정부 사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 사람들의 스토리가 곧 역사이고, 그 역사를 알아야 임시정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결국 이 기념관에서 임시정부에 대해서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이 ‘사람들’이라는 뜻도 된다.
역사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끝까지 독립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임시정부를 지켜왔던 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이른바 정부라면, 시대적 한계로 정부에 걸맞는 활동을 하지 못했어도 독립운동을 대표하고, 대한민국 헌법에 법통을 인정받은 독립운동 단체라면 사람들보다는 무엇을 했는지가 더 우선 기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이 역사적 사실이요. 냉엄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전시 구성은 이런 부분에 꽤 신경을 써서, 다양한 활동 설명도 자세하고, 한인애국단과 광복군에 대해서도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지는 무장투쟁의 흐름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하고, 병행된 외교적 노력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공채 발행 등 독립운동의 바탕이자 실질을 고민한 면도 엿볼 수 있다.
어두운 과거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강조하듯, 기념관 전망대에서는 서대문형무소가 내려다보인다. 수많은 불령선인을 고문하고 죽였던 악명 높은 장소보다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건물은 훨씬 높이 서 있다. 2025년 현재 임시정부 위상이 이렇게 높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실효적 활동이 부족했어도, 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게 귀국했어도, 활발한 연구와 관심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누군가에게 행동이 부족하다 비난할 수 있는 건, 스스로 생각을 가지고 행동한 사람이다. 생각만 했다는 이유로도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 시기, 설사 엄청난 결과를 내지는 못했어도, 목숨을 내놓고 모두를 위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의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에 뭐 더 대단한 이유가 필요할까.
기념관 뒤로 영재들이 공부하는 한성과학고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곧 철거될, 빈 집들이 있다. 서대문형무소가 서울의 어두운 과거였다면, 영재교육을 대표하는 과학고가 서울의 미래라 할 것이고, 재개발의 꿈과 철거로 인한 퇴거의 명암이 교차하는 주택가가 바로 서울의 현재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념관은 내려다보고 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지만, 그 밝은 미래를 예측은 하기 어려웠던 임시정부 분들은 지금 이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뭔가 생각이 많아진다. 과거, 현재, 미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정말 훌륭한 기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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