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작년 정규리그를 1위로 마감하고,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하며, 야구계 조롱거리에서 벗어난 LG였지만, 2년 연속 우승은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
지난 10월 19일 잠실에서 벌어졌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는 삼성라이온즈에 패배하면서, 많은 숙제를 남기고 LG의 한 시즌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는 강팀이라는 자리에 걸맞는 전력 보강이 필요한 LG
6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며, KBO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LG이지만, 사실 팬들의 기대치를 생각하면, 시작 막판, 그리고 가을야구에서의 성적은 '실패'라고 봐야 한다. 시즌 중반까지 엄청난 출루율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야구를 하며, 한때 1위 KIA를 위협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투타 모두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는 다시 단장과 프런트의 시간... 상위권이지만, 1시즌 만에 우승에서 확실히 멀어진 LG는 무엇을 보강해야 할까? 팬으로서 욕심은 끝이 없고, 생각보다 약점도 많이 드러났지만, 가장 크게 두드러진 건 '야수 주전 과부하'다.
LG는 유독 야수들의 출장시간이 길었다. 이렇게 의존도가 높다보니, 가을야구에서도 컨디션이 안 좋은 문보경 등 주전 자리를 메워줄 만한 선수가 없었다. 이는 전 포지션에 걸쳐 마찬가지여서, 잠깐 박동원을 대체했던 허도환도 큰 실수를 했고, 그나마 변화를 시도했던 지명타자도 이영빈과 김범석은 아직은 1군에 실력이 미달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더하여 주전 나이도 이제 꽤 고령이고, 고액연봉자가 많아서.... 야수들의 이런 과부하는 쉽게 개선하기 어렵다. 박해민이 고액연봉에 에이징커브가 의심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럼 당장 중견수에 올릴만한 자원이 있는지 의문이다. 안익훈? 좋은 선수이지만, 단기전에서 박해민보다 나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펀치력이 완연히 감소하여, 투수들이 맘 놓고 높은 공으로 공략하는 정도가 된 김현수도 마찬가지인데, 곧 돌아올 이재원 정도면 모를까.... 당장 김현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가능성을 보인 코너 외야수도 드물다..
(사실 이재원도 펀치력은 S급이지만, 돌아나오는 느낌의 스윙을 빠른 배트스피드로 만회하는 스타일이라... 갈수록 발전하는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처가 쉽지 않아 보인다... 플레이오프에서 젊은 삼성 타자들이 보여준 높은 존만 노리고 풀스윙한다는 개념이 필요할 것 같긴 한데... 딱히 멘탈이 강하지 않고, 이미 나이를 먹어 조급해졌을 이재원이 그런 변화를 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중간계투는 스토브리그에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올해 중간계투진이 모두 망해버렸기에 더 나빠질 것이 없기도 하고, 6월이 지나야하지만, 이정용이 돌아온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보다 못할 수 있나... 싶을 정도 난조를 보이고 있는 고우석도 LG의 노력 여하에 따라 유턴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우석도 팬들의 믿음을 많이 잃었지만, 당장 30세이브 이상을 보장하는 마무리 투수가 온다면, 유영찬 중심으로 필승조를 단번에 재편할 수도 있다.
염경엽의 야구로 왕조 건설은 가능한가?
앞서 다뤘던 미시적 지적 말고, 근본적 의문을 한 번 제기해보자. 염경엽 스타일 야구로 왕조 건설이 가능할까? 팬심에 기대어 생각해 봐도... 왕조 건설은 어렵다.
염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뛰는 야구이다. 하지만, 가장 큰 LG의 문제는 신민재, 박해민, 오지환 정도를 빼고 딱히 도루에 능한 타자가 없다. 홍창기가 다소 억울해하겠지만, 홍창기의 지난 2년간 도루 성공률을 보자... 그러다 보니 염 감독은 엔트리에 늘 최승민, 김대원 등 2명 정도의 대주자를 넣는다. 문제는 이들이 수비에서도 별로 도움이 안 되고, 공격에서는 존재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일 상황을 대비해서 내야 대수비 요원으로 구본혁을 또 넣어야 하고.. 이렇게 엔트리 낭비가 발생한다. 단기전에서는 어느 정도 변칙도 필요하고, 감독 스타일에 따라 이 정도 엔트리는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정규시즌에서도 운용이 비슷한 양상이다 보니, 젊은 선수들에게 대타로서 경험치를 줄 타석이 부족해진다. 염 감독은 마땅히 키울 재목도 없었고, 김범석도 자기관리에 실패했다 주장하겠지만... 글쎄... 특출한 재원이 있어도 염 감독이 대타요원을 엔트리에 넣고 신경 써줄 것 같지는 않다. 이 부분은 2025년 김범석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더 명확해질 듯..
이런 대주자 선호와 주전의 과도한 기용 때문에 염스타일은 샐러리캡 시대에서 빛을 발하기 더 어렵다. 엔트리에서 야수에게 경험치를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전만 과도하게 기용하면 야수를 성장시키기는 어려워지고, 외부에서 야수 FA를 영입하면서 적절한 자극을 주는 것이 해답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제 KBO는 샐러리캡이 적용되기에, 이미 거의 예산 한도에 도달한 LG가 야수 FA를 영입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내년 FA는 마침 괜찮은 야수 자원이 심우준, 허경민 정도에 불과하다. 둘 다 LG에서 거액을 주고 영입하기엔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염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 가진 야수 밑천으로도 LG에 비해 나아보이는 기아, 삼성을 밀어내고 왕조를 만들긴 어렵다. 투수진이야 올해 임찬규와 손주영이 놀라운 시즌을 보냈고, 외국인 조합도 괜찮게 시즌을 마무리했기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수 운용이 가능하지만, 강한 타선 없이 왕조에 근접했던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당장 LG에게 필요한 건? 결국 적극적 타자 육성
그럼 결국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LG에서 필요한 건 뭘까? 당장 영입할 만한 FA 자원도 없고... 이재원이 돌아오기 전까지 확 떠오를 타자 자원도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지금 2군에 있는 유망주들이라도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면서 가능성을 키워줘야 한다. 생각만 해도 슬퍼지지만, 올해 가을야구에서 가장 필요했던 선수는 이주형과 손호영이었다. 컨디션만 좋으면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받아치는 이주형과 엉뚱한 타이밍에도 장타를 터트릴 수 있는 내야수 손호영... 아쉽지만 두 선수 LG는 떠나보냈고... 이제는 그만한 자원이 없는 2군에서 누군가를 키워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살을 못뺀다고 비난만 하지 말고, 매니저라도 붙여서 야식을 못 먹게 감시를 하던지.. 김범석에 대한 집중관리가 필요하다. 지금 체중으로는 상무도 위험할 텐데... 자율적으로 관리를 못하면, 아쉽지만 타율에 의해서라도 뭔가 해줄 필요는 있다.
송찬의, 이영빈 둘이 내야의 미래라면 조금은 울적하지만, 타격 포텐 특히 빠른 공에 대한 반응이 구본혁 보다 낫다면.. 정규시즌에서도 적극적으로 써 볼 필요가 있다. 미리미리 경험치를 주지 않으면 한 수준 높은 가을야구 투수들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이영빈이 보여줬다. 나름 침착하게 공을 맞췄지만 겨우 내야에 집어넣는 타구로는 요행을 바랄 수도 없다.
ps. 박해민, 김현수 두 베테랑에 대한 정리는 아직 논하기 이르다. 그간 해준게 얼마인데... 식의 베테랑 우대론이 아니다. 아직은 젊은 타자들이 이 두 선수를 밀어낼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염감독도 이 두 베테랑이 가을야구에서 언젠가 한 번 해주는 레벨이 더 이상 아닐 수 있음을 보았을 터, 둘이 지쳐 보이면 시원치 않더라도 젊은 외야수들을 테스트해 보길 바란다. 혹시 모른다. 드래프트 끄트머리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문성주처럼, LG타선을 이끌어줄 또 다른 젊은 재원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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