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42 - 생각의 지도(2004, 리처드 니스벳)

마셜 2024. 8. 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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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고맙게도 독서모임 멤버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책을 추천해주고 있다. 이 책도 내게는 전혀 관심 없는 분야에 해당하는데 추천멤버는 10년전 쯤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는 추천이유을 밝혔다. 추천멤버도 언급했지만, 감히 동서양 생각 구조의 차이에 도전한 책, 동양의 극단에서 살고 있는 한국 독서광들에게 신선하면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일단, 책 제목은 '생각의 지도'가 아니라 '미국인과 중국인의 생각의 차이 '라고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가 흔히 쓰는 동양이라는 표현 자체가 중국-한국-일본 을 포괄하기도 어렵거니와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는 한 범주로 묶기 자체가 어렵다. 아마도 전 세계인의 문화(?) 차이에서 기인하는 생각의 차이를 크게 두 범주로 입증해보고 싶었던 듯 한데, 애초에 이런 시도 자체가 너무나 불쾌하고도 무리한 범주화가 아닌가... 한 번 생각해본다. 

 

 서문이 꽤 코믹하다. 다른 책 서문을 읽을 때, 열거된 사람들이 정말 저술에 그렇게 많은 공헌을 했을까 궁금했다면서... 그런데 진짜 여기 적은 분들은 이 책에 큰 공헌을 했다고 강조를 하고 있다. 

 

 코믹하다는 의견은 여기까지였고, 그 외에는 모임 내내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단 의학계에서 일하는 멤버는 의학 쪽에서는 서양이 더 폐쇄적이고, 권위적에 복종하는 문화가 더욱 강하다면서 나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 의학계가 토론에 열려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멤버는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 한국인이 이 책에 열광한 이유를 '자기만족' 이라고 지적하면서, 서양에 완패한 동양인들의 기를 살려주는 저술이기에 각광받은 것이라고 비판적인 지적을 했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 동양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저술을 했을 거라는 추측은 전혀 신빙성이 없고, 서양인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관심을 끌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시아인이 같은 연구를 수행했다면 조금 관점이 달랐으려나... 하는 궁금증은 있다.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파트는 아무래도 '8.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이다. 분야별로 혹은 테마별로 동서양 차이를 짚어내고 있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몇 가지 모임에서 다뤄진 부분들을 적어본다. 

 

 

 의학에서의 동서양 차이

 

 멤버 중 의사 두 분은 동양 의학이 서양 의학보다 더 종합적이기에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설명에 격하게 반다했다. 전통 의학으로서 영역은 존중하지만, 과학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한의학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쏟아져 나왔고,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지적은 흥미로웠다. 

 

 

 법률에서의 동서양 차이

 

 '(변호사 수/엔지니어 수)'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이 일본보다 41배 정도 엔지니어에 비해 변호사를 선호한다는 분석은 큰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로스쿨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많이 알려졌지만, 한국에서 친숙한 '변리사'를 영어로는 'patent lawyer'라고 한다. 물론 특허청 관련 업무를 하는 별도 직업이 있지만, 한국처럼 변리사가 특허에 관련한 대표적 법률전문가로서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 노무사의 경우는 미국에서는 아예 생소한 용어이며, 노사관계 전문 변호사들이 활동할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흔히 유사직역이라 부르는 관세사, 노무사,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행정사 모두 비슷한 현실이며, 이러한 제도는 한국이 변호사가 부족했던 시절 일본의 제도를 참고하며 정립해온 것이다. 한국과 일본 현실이 비슷하리라 추측해보면, 변호사 수만 단순 비교하고, 일본에 비해 미국이 법적 판단을 선호한다고 결론짓고, 일본은 중재를 선호한다고 지적한 건 심각한 오류 가능성이 있다. 덧붙여서 중재 또한, 재판과 다르긴 하나, 본질적으로 사법적 판단이 아닐지도 의문이다. 

 

 

논쟁에서의 동서양 차이

 

 일본 기업의 경영자/이사회는 미국과 다르다고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한중일 세 나라의 경영자들은 스타일이 같을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현대차/LG/SK/카카오/네이버 의 경영자는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이사회를 운영할까?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라고 지적할 수 밖에 없다. 

 

 

계약에 대한 동서양 견해 차이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설탕 계약 사건을 들어, 저자는 일본에서는 계약 후 재협상이 흔한 일이지만, 서양에서는 계약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지적을 한다. 글쎄다. 만약 일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설탕을 납품했다면 오스트레일리아 경영진도 일본에 부탁은 해보지 않았을까? 물론 전체적으로 서양의 산업화를 따라잡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과 베끼기 등이 수반되었던 동아시아 산업화 과정에서 계약 세부내용이 때로는 무시되는 경우가 빈번했겠지만, 계약마다 상황이 다를 텐데 이를 일반화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이다. 

 

북한에 대한 논쟁 부재가 신념 결여 때문이라고?

 

 마지막으로  논쟁보다는 타협을 택하는 동양을 설명하면서 '한국 vs 북한' 비교를 예로 든 부분에서는 심각한 현실 외면(혹은 간과)를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예전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이는 자신 입장에서는 뛰어난 경제적 성장을 생각했을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그럴까?

 냉전을 주도했던 자유민주주의 최강대국 미국조차도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공산주의 세력과의 전면전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던 최빈국 한국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면, 한국전쟁부터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정보를 공개하기에는 휴전 후, 20년 가까이 북한이 대등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끊임없이 한국 체제를 위협해온 것 또한 감안되어야 한다. 아니 경제성장을 떠나서, 북한은 1968년, 1983년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고, 1996년에도 잠수함이 한국에서 좌초되는 등 계속되는 무력도발을 해왔다. 이러한 무력도발과 수반되어 많은 공작이 난무했던 상황에서, 토론이 금지되고 정보가 봉인된 이유가 과연 신념 결여 때문인가? 

 너무나 단편적이기에 책의 신뢰도까지 떨어트리는 지적이었고, 책의 다른 서술의 신뢰도까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내게는 임팩트가 컸다. 

 

 

 몇 가지 비판 포인트를 정리하다보니, 좀 흥분한 감이 있는데, 사실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이 거대연구 자체는 엄청난 가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러 국가를 아우르는 수많은 실험과 사회과학적 분석, 그리고 이를 문화적 차이로 끌어낸 통찰력은 이 책이 한국에서도 명저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렸던 1판 2쇄 책에는 아마도 대학원생인듯 휘갈겨 쓴 메모와 밑줄이 굉장히 많았다. 독서모임에 추천 받은 좋은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팝콘 먹듯이 읽었던 나와는 달리, 이 책을 거쳐갔던 많은 사회과학도들은 그만큼 절실했고, 많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무려 20년 전에 이렇게 거대연구를 진행했다는 것 자체도,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과학도들에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킬만한 선구자적인 연구업적이다. 솔직히 난 이 책에서 평화와 공존의 길을 찾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면을 발견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비판적인 책 리뷰를 읽느라 고생하신 분들을 위해, 긍정적인 리뷰를 하나 링크하면서 글을 마친다. 

 

 

[21세기 고전] (27)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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