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40 - 시를 잊은 그대에게(2015, 정재찬)

마셜 2024. 8. 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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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차: 교보문고)

 

 내가 읽은 건 2015년 판인데, 교보문고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멋진 표지는 아마도 2020년 판인 모양이다. 감성적인 파란색 일러스트가 좌우로 나란히 편안함을 준다. 2015년 판에는 떨어지는 빗방울 사진과 함께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다소 영업(?)멘트 같은 문구가 있었는데, 시 평론으로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덕에 출판사가 이제 그런 멘트는 필요없다고 생각할 정도의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시에 대해서는 최근 전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게 독서모임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 멤버가 책을 추천한 건, 정재찬 교수가 강의하는 대학을 졸업한 덕에 그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수강신청 때마다 인기가 많았던 대형강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다리 건너 제자 입장에서 들은 평판도 전해주었는데, 훌륭한 스승으로 인간적이고 좋은 분이라 한다. 명망있는 교수로 여러 분야에서 일하시다 보니, 특강을 들어본 기회도 있다고 하는데, 강의도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라디오에서도 종종 시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고 하니... 이 정도면 재미있게 시 이야기를 하시기로는 이미 탑티어 인 분이다. 

 

 너무 오래된지라 학창 시절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시를 어떻게 공부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결과는 좋았고, 답안지를 냄과 동시에 모든 지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그렇게라도 시를 읽는게 괴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시를 공부하는게 괴롭지 않았다는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 멤버는 수능 학원에서 기억하기 좋게 시 강의를 재밌게 해주던 강사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시화전도 했다고 하니... 역시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던 사람은 더 기억에 남는게 많은 법이다. 

 

 어떤 책이든 만능일 수는 없듯이, 이 책도 모든 멤버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담담하게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그래도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한 멤버는 무념무상 잘 읽었지만, 크게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책 이야기로 조금 더 들어가보면, 이런 저런 그 시절 시인들, 유치환, 박목월 등의 믿기지 않는 불륜행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출제포인트를 설명하기도 바쁜 고교 교사가 이런 뒷얘기를 해줄 시간은 당연히 없었을 테고, 정 교수처럼 맛깔나게 할 능력도 부족했을 것이다. 멋진 서정적 글솜씨로 포장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충격적인 정도의 불륜이었고, 그저 낭만으로 감성을 자극하며 그들은 그렇게 살아갔다. 그 시절 한국과 지금이 같으면서도 얼마나 달랐는지를 세삼 생각하게 된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그들의 낭만을 느끼려고 노력하며, 감정에 집중하려 해보았겠지만... 글쎄... 이제 그러기에는 내가 나이를 너무 먹었고, 때가 많이 묻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무리 낭만으로, 감정으로, 운명적 끌림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불륜은 불륜이요. 축첩은 축첩이다. 

 

(출처: 교보문고)

 

 모임 멤버 넷의 책을 모두 확인해보니, 13쇄 판본이 있었다. 시 관련 책으로 13쇄면 대단하지 않나 싶은데, 온라인 교보문고에 올라온 도서 홍보 이미지도 꽤 감각적으로 진화했다. 아마도 신판이 나오며, 디자인도 좀 더 밝은 색채로 바꾼듯, 그 중에서도 저자인 정재찬 교수의 젊은 이미지의 외모를 뽐내는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장(?)을 하셨을지... 피식 웃음짓게 된다. 

 

 가요 '가슴앓이' 가사를 빗대어 시를 평가하는 등, 이 책은 지금 기준으로는 옛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출간되었던 2015년 기준으로는 시를 평한 책 치고는 정말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젊은이를 위한 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정재찬 교수는 시와 거리가 먼 대학생들을 위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강의안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지금 내가 정재찬 교수 강의를 듣는다면, 이 정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 MZ세대들에게는 내가 (그리고 멤버들이) 공감했던 이산가족의 극한의 슬픔이나, 김광균의 '성공한' 삶 속의 질곡은 좀 낯선 이야기일 테니까... 반대로 그 세대를 위한 가요 등이 강의 중에 등장한다면, 내게는 또 어려운 얘기가 될 테니... 끊임없이 젊은이와 소통해야 하는 베테랑 교수가 인문학적 감성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저작과 강연에 내 세대를 위한 배려가 없다는 건 너무나 타당하나... 그래도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든다. 

 

 어떤 글이든 서사를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는 글 뿐 아니라 다른 예술 작품도 더 마찬가지다. 그리고 서사를 알면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그레서 우리는 학원강사들을 시를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저 수능을 치고 모두 잊어버린 시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애쓰는 이 책은 꽤 소중하다. 여전히 남에게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읽어가는 수많은 책 중에 '시'를 논하는 책 하나 있었다는게, 나중에 돌아봐도 내게 특별한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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