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에서 강팀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 것. 누구나 아는 이 방법이지만 쉽지는 않다. 풀은 제한되어 있고, 너무 잘하는 선수를 뽑으면 메이저리그나 일본에 빼앗기기 일쑤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공수겸장 내야수를 보유하는 것이다.
이 방법도 누구나 아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면, 맞는 지적이지만, 누구나 아는 이치를 지키며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자. 야구판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수준급 외국인과 공수겸장 내야수 보유라는 조건을 클리어하기는 만만치가 않다.
29년간의 긴 여정 끝에 작년 우승을 차지한 LG트윈스도 좀처럼 이 조건과는 거리가 먼 팀 운영을 보이며, 기나긴 암흑기를 자초했었다. 구멍인 3루와 2루를 어쩌지 못해서 물음표인 외국인 내야수를 선발했다가 퇴출하기를 반복한 것 뿐 아니라... 오지환이 수준급 유격수로 올라서기 전까지의 허둥지둥 키스톤 콤비들은 지금도 회상해보면 혈압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러한 암울한 기억들이 정말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홈런이 최근 연달아 터졌으니, 바로 4월 7일(토)와 8일(일) 연달아 터진 구본혁과 문보경의 홈런이다.
1. 혈전을 마무리하는 구본혁의 끝내기 만루홈런 - 4월 6일(토) KT전 9회말
LG트윈스의 내야뎁스가 정말 두꺼워졌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바로 최근 손호영-우강훈 트레이드이다. 펀치력 있는 멀티내야수로서 활용도가 높은 손호영을 과감하게 트레이드할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구본혁' 덕분이다.
이제 27세가 된 이 군필내야수는 내야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다. 어깨나 스텝 모두 괜찮아서, 승부처에서도 믿고 대수비로 넣을 수 있는 재원이다. 약점이라면 타격이었는데, 상무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이 또한 기대를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손호영의 공수 역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손호영에 비해서 우위에 있는 건 부상경력이 없다는 점, 그리고 두 살 어리다는 점이다.
오스틴-신민재-오지환-문보경 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주전에 구본혁이 멀티 백업으로 자리를 잡고, 곧 이영빈이 제대하는 상황에서 이해가 되는 선택이지만, 구본혁이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속이 쓰릴 수도 있는 트레이드인데, 최근 구본혁의 활약은 그야말로 손호영을 웃으면서 보내줄 만한 정도이다.
특히, 4월 7일 우승-준우승 팀간 혈전의 종지부를 찍은 만루홈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9회말 1사만루에서 정면승부를 택한 박영현의 직구를 그대로 받아쳐, 라인드라이브로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만들어냈는데, 불과 이전 끝내기를 쳐내고도 빚맞은 안타라 아쉽다며, 정타로 끝내기를 치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던 아쉬움을 스스로 풀어낸 장면이라 팬들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대수비로 들어와 끝내기 홈런을 칠 수 있는 27살 멀티내야수가 있는 팀, 그것도 수비가 강한 군필내야수라면 강팀의 한 조건을 어느 정도 클리어한 셈. 거기에 스스로 결자해지하듯 노려서 쳐낸 끝내기 홈런이라면, 팬들에게 그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2. 파울인가 아닌가? 응시하는 홈런 타자의 간지, 문보경의 쐐기포 쓰리런 홈런 - 4월 7일(일) KT전 7회말
이제 LG에도 이런 내야수가 있다. 23살 군필에 부상경력도 없고, 공수 모두 뛰어난 3루수가 바로 문보경인데, 오지환이 긴 시간 수련을 거치며 공수 모두 성장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린 나이에 완성형 선수로 성장했다.
구본혁이 전날 결승 만루홈런을 날리며, 내야 주전 경쟁에도 명함을 내밀 수 있음을 보여주자, 문보경이 엄청난 비거리 홈런을 선보이며, 3루 주전은 본인임을 재확인시켰다. 영상을 보면, 타격 후, 파울인지 아닌지 타구를 응시하는 문보경 모습이 인상적인데, 사실 이런 모습은 야구시합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간지 넘치는 장면이다. 이미 때리는 순간 비거리는 충분한데, 파울이려나...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건데.. 실제로 비거리 110m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타구였고, 해설이 발사각 37도를 칭찬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
특히, 팀 타선이 초반 6점을 집중시켰음에도, 계속해서 추격을 허용하며 8:7까지 쫓긴 채 마련한 7회말, 추격 의지를 꺾는 대형홈런은 3 연속 난타전을 치렀던 선수단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듯했고, 화요일까지 야구 없는 이틀 동안 LG팬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29년간의 도전을 지켜봤던 올드팬으로서, 아직도 작년 우승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부실한 내야로 4~5명의 선수가 한 포지션에서 테스트되는 것도 봤던 팬으로서는... 두 자릿수 홈런을 날리며 송구도 안정적인 3루수와, 공수겸장 내야멀티백업의 존재는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다. 두 선수 모두 이제는 우승징크스 없는 팀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주전경쟁 과정에서 기량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올해 LG의 우승 도전을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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