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정도로 나이 먹어 보이지는 않는다.. 난 안경일 낄 정도로 시력이 낮지 않다... 그리고 이 정도로 머리가 크지는 않다.. 여러모로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그래도 부정할 수 없다. 뭔가 얼이 빠져 있는 듯한 저 표정은 리얼하게 잘 구현이 되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본 내 표정을 누군가 봤다면 아마 저렇게 보였을 거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정도였나...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럴 나이가 되었구나 생각도 드는.... 그리고 그러면서도 다 부정하고 싶은... 심각한 건 없다고 자기위안을 삼고 싶은.. 그런 복잡하고도 온갖 걱정이 밀려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몸에서 물혹이 보이기 시작하고, 각종 염증수치도 노란불로 느껴지는 데다, 공복혈당까지 경고메시지를 보내온 검사지는 그야말로 내게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내용증명에 다름 없었다. 나름 운동도 해왔고, 말로는 이것저것 간식도 피하려 애를 써왔지만, 내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기에는 많은 것이 과했고, 많은 것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결과지를 열었던 주말 이후, 첫 출근에 야채로만 된 도시락을 싸왔다. 마침 점심 약속이 없었고, 기분도 뭔가 나가서 사먹고 싶지 않았다. 나름 고민해서, 오후 배고픔에 또 과자에 손대는 일이 없도록 단백질 파우더도 함께 가져오고, 마침 눈에 띈 부활절 계란도 한 알 함께 점심메뉴에 올렸다. 이리저리 합쳐놓고 보니, 저칼로리 식단이었는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나름 편안했고, 고추장에 찍어먹는 생 양배추 맛도 나쁘지 않았다.
인정할 걸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포기하지 않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건 분명 필요한 삶의 자세이지만, 이제 어디서든 책임져야할 일이 따르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효율이 떨어지는 시기라는 걸 인정해야 뭔가 더 쉽게 앞으로 나아가고, 더 선명하게 저 멀리를 볼 수 있으리라.
건강하게 살자. 진심으로 내 자신에게 진지하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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