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야구 동호인이라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한 때 LG 트윈스 경기라면 하이라이트 정도는 전 경기 챙겨볼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고, 신생팀이나마 사회인 야구도 기웃거려 본 적이 있지만, 그래도 제게 '동호인'이라 하면, 매주 경기를 뛰고 개인장비에도 계속 신경을 쓰는 그런 사람인가 봅니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신생 사회인 야구팀에서, 운 좋게 야구용품 회사를 오래 다닌 형님을 만나게 되고, 그 형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장비를 구입할 때, 저도 함께 야구화를 구입했습니다. 유니폼도 모자도 그때 다 장만했지만, 정작 글러브는 형님이 추천한 걸 사지 않았네요. 글러브는 그전부터 써왔던 낡아빠진 올라운드 글러브를 그냥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그 글러브를 쓰고 있는데, 인터파크에서 샀던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포수 미트를 끼다 보니, 가끔 하는 캐치볼에서도 정작 제 글러브는 찬밥이네요.
그렇게 단체구매를 하다보니, 정확한 가격도 브랜드도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다만, 현장 베테랑이 도매가로 구해준 물건이라 퀄리티는 좋았고, 실제로 거의 15년을 사용하는 동안 징의 고정 나사가 한두 번 풀린 것을 빼고는 튼튼하게 잘 버텨줬습니다. 이 번에 리타이어 하게 된 건 밑창이 아예 떨어져서인데, 어떤 신발이던 10년이 넘으면 그럴 법도 하죠. 일반 구두라면 애정을 가지고 수선을 해서 다시 신었겠지만, 기능은 멀쩡했어도 외관도 이미 닳아 떨어진 곳 투성이라, 그럴 엄두는 나질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사회인 야구팀과는 인연이 끊어졌고, 직장에서 완전초보팀을 이끌며 캐치볼도 하고, 펑고도 치고, 배팅볼도 던지고 있지만, 사실 야구화 없는 동료들도 함께 하는 대 아무 문제는 없죠. 실제로 대학시절 중앙동아리 선발투수도 뛰었던 친구는 당시에도 야구화 없이 그냥 운동화를 신고도 활약했습니다. 저는 그런 중앙동아리 친구들에게 늘 구박당하고 지도받던 실력인지라 딱히 야구화를 통해 뭔가 더 활약할 실력이 못 되지만, 그래도 긴 시간 이 신발이 있어서 캐치볼 할 때도, 더 산뜻한 기분으로, 뭔가 더 동호인이 된 기분으로 달리고 공을 던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신발을 신고, 삼진도 당해보고 (꽤 많이), 2루타도 쳐보고, 도루도 해보고, 병살타도 쳐보고, 병살타도 잡아봤네요. 포지션으로는 좌익수, 우익수, 2루수, 1루수, 포수 이렇게 소화를 해봤네요. 훨씬 야구를 잘하는 중앙동아리 출신 친구는 할 거 다 해봤네 뭐 라며, 그 정도면 웬만한 동호인 만큼 해본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야구화를 또 샀습니다. 이번에도 어쩌다보니 검정을 골랐는데, 몇 달 전에 구매를 해서 이미 캐치볼 때 신고 있음에도 몇 글자 적어보고 싶어서 이 신발을 버리는 걸 미루고 있었네요. 이제 대대적으로 책상 정리를 하는 시즌을 맞아 버릴 것을 눈에 불을 켜고 찾다 보니, 서랍에 들어있던 이 신발이 생각나 사진을 찍어봅니다.
아마 제게 야구화는 이 번에 산 게 마지막이겠지요. 앞으로 새 신을 신고 더 많은 연습과 경기를 하길 바라지만, 글쎄요. 이제는 사진으로 남을 이 야구화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초보들 사이에서 동호인 인척 할 수도 있었고, 그라운드에 찍힌 선명한 제 발자국을 볼 수도 있었으니까요. 새 야구화와도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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