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12 - 건축가의 도시(2021, 이규빈)

마셜 2023. 6. 1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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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몇 안 되는 독서모임 멤버를 위한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번 책이 그랬다. 눈에 들어왔던 몇몇 역사책은 지나치게 학술적인 것 같아 부담스러웠고, 소설책은 최근에 좀 집중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뭔가 색다른 책을 추천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집어든 책이 바로 '건축가의 도시'였다. 도서관 신간 코너를 가보면, 가끔 핫한 신상품 같은 좋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단점은 도서관의 도서 구매는 마케팅 이상의 목적을 갖다 보니, '가치' 혹은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재미와 깊이 중 하나가 결여된 책들이 생각보다는 많다는 것이다. 
 

<출처 : 교보문고>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첫 인상이 매우 좋았다. 깔끔해 보이는 표지 디자인에, 너무 학술적이진 않을 것 같은 '건축'에 대한 책이었고.... 첫 페이지를 넘겨보니, 건축가가 사용하는 도면에 대한 해설 또한 신선한 시도였다. 목차 또한 나라별로 두루두루 구성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골라든 책은 독서모임 네 멤버가 함께 읽게 되었고, 다양한 평이 엇갈리는 리뷰가 잇따랐다. 
 
 새로운 시도는 늘 위험이 뒤따르는 법. 읽을 때 괜찮았던 느낌을 받았던 것과 달리, 다른 멤버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 관심사가 같을 수는 없는 법. 다들 건축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이야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그간 읽어왔던 명작 혹은 베스트셀러와 비교당하며 이런저런 지적들이 이어졌다. 
 
 물론 90분이 넘는 시간을 이야기하다 보면, 장단점을 두루두루 이야기하게 되는 법. 나 스스로 장점으로 꼽았던 몇 가지를 이야기했을 때, 특별히 반론이 없었던 것을 보면, 책 자체를 그렇게 혹평했다고 볼 수는 없겠다. 간만에 냉소적 지적이 이어졌던 책, 몇 가지만 기록에 남겨본다.  
 
 
쿠리치바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인상 싶은 도시는 쿠리치바였다. 지금은 숨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지만, 도입 당시에는 엄청난 논란을 낳았고, 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시그니처 시스템이 된 서울시 버스환승할인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것은 놀라웠다. 브라질이 엄청난 국토와 잠재력을 가진 대국이긴 하나 행정제도나 교통시스템이 선진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편견에 불과했고, 책에서 설명한 쿠리치바 시는 건축가에게는 서울과 한국 대도시의 선진 선례가 될만한 곳이었다. 
 
 
다음브런치 경쟁을 뚫은 작품이라 기억에 남았다. 
 
블로그, 다른 SNS, 어떤 것이든 간에 쓰여지는 글은 남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라는 한 줄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 이제는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내가 여기에 글을 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고 더 많이 이야기해 주길 바라는 것은 맞다. 
 그렇게 글을 쓰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중간 목적지 정도가 바로 책 출간이 아닐까. 갈수록 '책'이라는 것도 전문가 만의 영역에서 벗어나,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까지 도달할 수는 있는 '목표'가 되고 있는 요즘.. 아니 목표가 아니라 중간플랫폼으로 까지 변화되고 있는 요즘, 적어도 젊고 유능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이 건축가는 목표를 달성했고, 동시에 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 
 최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다는 '다음 브런치'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출간되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독자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라고 짧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고, 멤버들에게도 책을 낸다면 어떤 주제를 선택하겠느냐라는 명랑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직무를 망라하겠다.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답도 있었지만, 한 멤버의 '소설'이라는 예상외의 답변에 즐거운 상상은 이어졌고, 역시 잡담 또한 집중해서 하면 알차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약간 나열식으로 한 것이라 한계는 보였다. 인문학적 통찰은 부족해 보인다. 
 
 젊은 건축가의 노작을 감상하고, 그 노력과 에너지에는 당연히 박수를 보냈지만, 각 국가의 건축물들을 나열식으로 구성한 한계는 분명히 보였다. 이제는 새로운 시도에 찬사를 보내기보다 낯선 것에 까탈을 잡는 것이 편한 나이... 매사 불편한 것이 많은 내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중국-미국-브라질-프랑스'로 이어지는 여정 또한 순서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기 어려워보였고, 예리하게 들여다본 다양한 건축물 또한 의미 있는 순서로 배치되지 않았기에.. 롤러코스터까지는 아니지만, 건물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에 있어서 업다운이 느껴졌달까... 일관된 흐름을 느끼기 어려운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건축가에게 할 말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적 통찰이 더해졌다면 정말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 

 
 
사진 솜씨가 부족, 전체적인 구도가 들어간 사진이 없었다. 
 
 꼼꼼한 도면이 상상력을 자극해주기도 하고, 친절한 설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건물을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이 부족한 것도 크게 아쉬운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책 307, 309쪽에 연달아 등장하는 생장요새와 패널은 '마르세유의 그 다리'를 이해하고 느끼기에 필수적 구조물일텐데... 두 사진으로는 그 조화(혹은 부조화)를 이해하기가 꽤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책을 출간할 때는 출판사에서 내용에 삽입할 사진을 구해주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순수하게 건축가 이규빈의 사진만을 이용한 것은 물론 대단한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전체를 건축물 별로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사진이 더해졌다면, 나처럼 공간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내용을 즐기기에는 더 좋았을 것 같다. 
 
 
세계무역센터에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그 때 난 현역군인이었다. 그 참혹한 테러의 의미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를 이해하기엔 난 너무 철이 없었다. 이런저런 담론이 쏟아지고, 그 후 전쟁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순간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나, 그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전쟁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도 알게 되고,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 건축가가 눈여겨본 십자가에 대한 글귀를 읽고 나니 한 번 그 현장에 가보고 싶어졌다. 직장과 집 아닌 곳, 몇십 km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 일상에서 그 바람이 얼마나 현실화되기 어려운지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 수많은 안 되는 이유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짓, 그리고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한 가지 방식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여러 건축물에 관련된 글 중, 가장 감상에 젖은듯한 '세계무역센터의 십자가'는 그런 면에서 적어도 나라는 독자에게는 꽤 어필한 글이다. 

<출처 : 교보문고>

 
 한 멤버가 짤막하게 평한 한 마디 말로, 이 책에 대한 평을 마칠수 있을 것 같다. 
 
 "무념무상으로 끝까지 읽었다."
 
 모임 당시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보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할수록, 그래도 저렇게 무념무상으로 진행을 허하는 책이라면... 꽤 좋은 글이라는 칭찬이 아닌가 싶다. 판단은 다른 독자의 몫... 다음 브런치에서 각광받았던 젊은 건축가의 노작을 보고 싶다면, 선택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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