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라는 다소 어색한 용어가 공론화되고 있다. 동등한 선수 자격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리고, 그 과정에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는 프로리그에서 신분이라는 용어가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자체도 눈에 띄는데, 그 대상이 오랜 시간 농구 국가대표로 활약해 온 라건아라서 더욱 농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원만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본리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터뷰가 있었고, 당분간은 국가대표팀 경기도 없기에... KBL 팬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 이상한 '신분' 때문에 라건아는 한국을 떠나게 되는 것인가?
사실 '신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약간의 차별 뉘앙스가 있다. 개념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출처: 두피디아 백과사전)과 같은데, 실제로 공식 법률용어로서 자주 쓰지 않는 이유가 짐작이 된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 이 경우 신분을 구성하는 요인은 혈통 ·가문 ·직업 ·수입 ·재산 ·권력과 같은 것으로, 사회 ·경제 ·정치 ·법률 등과 관계가 있다. 법률용어로써 신분에 관해서 규정된 엄밀한 정의는 없다
이 묘한 뉘앙스의 용어를 배경으로 라건아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 있다. 문제의 개요는 다음 기사를 한 번 살펴보자. 6년간 라건아의 '신분'이 사실상 외국인이었음을 기사는 잘 요약해 준다.
결국 이제 35살인 라건아, 특별귀화로 한국인이 되어, 몰락해가는 한국대표팀에서 고군분투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건만, 농구선수로서의 황혼기인 지금도 그는 소속팀 KCC-협회-연맹과의 복잡한 4자 계약에 얽매여있는 특이한, 유일무이한 한국인 농구선수이자, 국가대표팀 부동의 센터이다.
어디까지 대표팀에서 뛰어야, 라건아는 한국인 신분이 되나?
아마도... 프로농구여맹은 라건아의 대표팀에 대한 기여보다는 프로리그 팀 간 전력 밸런스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지난 6년간 대표팀 경기마다 센터로서 적어도 골밑 걱정은 덜하도록 한 자리를 채워줬는데도, 아직은 누구도 이제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KBL에 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오늘 있을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고 하는데... 올 시즌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까지 단기전에서의 라건아의 위력을 보면, 이사회에서 전격적으로 라건아를 한국인 선수로 인정할지 잘 모르겠다.
얼마나 더 노쇠해야 라건아는 한국인 신분이 되나?
35살이라는 나이, 올 시즌 예년만 못한 모습을 보였던 라건아는 단기전에서는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이며, KCC의 우승을 이끌었다. 아직은 게임 체인저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인데... 이로서 리그 영향력이 약해졌으니, 한 팀이 외국인과 라건아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여론보다는 리그 내 전력 불균형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좀 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면 라건아는 얼마나 더 노쇠해야 한국인으로서 은퇴할 때까지 편하게 KBL에서 뛸 수 있나? 그리고 소속팀이 국가대표 수당까지 분담해야 하는 이상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나? 어찌보면 불공정 계약에 가까운 이 상황의 유일한 타개책이 빨리 라건아가 노쇠하길 바라는 것이라니 씁쓸하다.
김연경도 우승을 못했다. 우승 0순위 팀을 잡고자 노력하는 다른 팀들의 노력은 리그를 재미있게 만들 수 없는가?
한 번 생각해보자. 농구를 밀어내고 최고인기 겨울스포츠 자리를 차지했던 여자배구에서 명실상부 GOAT 김연경을 보유한 흥국생명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리그는 치열했고, 이변이 속출했으며, 김연경의 시즌 마지막 시합마다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리그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김연경 보유팀은 흥국생명도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별도 연봉제한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발상이 말도 안 된다는 걸 동의한다면, 라건아에 대한 이런 계약 자체도 부당하다고 봐야 하지 않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승 0순위 팀이 있고, 그 팀을 잡고자 노력하는 리그도 엄청 재미있을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한다고 스페인 리그가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악마처럼 선수를 수집한다고 일본야구가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우승할 수 있는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말자. 적어도 프로리그라면, 많이 투자한 팀이 우승에 근접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솔직히 팀을 매각하거나 해체할까봐 걱정되는 연맹이 눈치를 보느라... 누구나 우승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억지 평준화 리그를 만들려는 것 아닌가? 물론 지난 소노 사태를 보면, 팀 하나가 불안한 상황에 처하면 리그 전체가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프로 구단의 생리조차 무시하는 정서가 지배하도록 외면하느니, 그냥 의지가 없는 구단은 해체하고 8팀 혹은 6팀으로 리그를 운영하고, 다른 리그랑 교류전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샐러리캡 등 최소한의 제도 하에서 투자를 많이 하는 구단이 우승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거추장스럽고 이상한 규제는 과감하게 풀자. 절대강팀이 등장하는 것도 프로리그의 묘미 중 하나다.
이사회 명단도 구글링해서 찾기 어려운 KBL, 오늘 이사회를 통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결정한다고 한다. 농구팬들보다는 훨씬 더 한국농구를 걱정하시는 이사님들께서, 그간 한국농구를 위해 충분히 기여해 온 라건아를 한국인으로 인정하고, 귀화한 한국인 모범사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좋은 결정을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KBL에서 계속 라건아가 활약해 주길 기원해 본다.
'영원한 친구 -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다른 황금 밸런스 대형 트레이드 - 박병호-오재일 1:1 트레이드 (50) | 2024.06.02 |
---|---|
한국배구에 꼭 필요했던 승리 - 3년만에 승리, VNL 태국전 3:1 승 (68) | 2024.05.21 |
야스민과 니아 리드 사이 어디쯤 - 페퍼 배구단 외국인 자비치(Barbara Dapic)의 실력은? (65) | 2024.05.13 |
3단계도 합격 -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외국인 선수 1순위로 바르바라 자비치 지명 (79) | 2024.05.09 |
일단 2단계까지 합격 -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아시아쿼터 중국 미들블로커 장위 지명 (84) | 202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