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장도 극적이었던 라셈, 그만큼 극적이었던 KOVO 복귀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던 라셈의 마지막 인터뷰를 기억한다. 마지막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조차 구단의 처사가 잘못되었다며, 라셈의 시즌 중 갑작스러운 퇴출을 맹비난할 정도로 의외의 타이밍 발표였고, 대체로 들어왔던 산타나 선수의 기량도 S급은 아니었기에 팬들은 더더욱 여러모로 한국, 그리고 한국배구에 애정을 보였던 라셈 선수를 그리워했었다. 그 후 간간이 푸에르트리코 리그 활약 소식 등 이런저런 근황이 들려왔지만, 미국에 프로리그가 신설된 데다.. KOVO 선수 선발 트렌드는 더더욱 파워형 위주로 집중되면서, 라셈이 드래프트에서 선발될 것을 기대한 팬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흥국의 새 감독 요시하라 도코모는 드래프트에서 의외로 간절히 한국 복귀를 꿈꾸었던 라셈을 선택했다.
할머니의 나라로 돌아오는 ‘한국계 3세’ 흥국생명 라셈 | 중앙일보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의 나라를 떠난 라셈은 이후에도 V리그 복귀를 끈질기게 타진했다. 지난 시즌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힐 정도로 기량이 성장했고, 다시 도전한 이번 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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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마지막 순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떠났던 할머니의 나라로 돌아오게 되다니... 이 극적인 결정에 많은 언론은 관심을 가졌고, 흥국생명 팬이 아닌 배구팬들도 시즌을 기다리며 많이 좋아졌다는 라셈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기대하게 되었다.
더 반가운 뉴스, 귀화??????
라셈 복귀에 대한 반가움이 가라앉을 때 쯤, 더 반가운 뉴스가 보도되었다. 연합뉴스에서 라셈의 귀화 가능성을 공식보도 했는데, 라셈의 아버지가 본인 귀화절차를 알아본 적이 있고, 라셈 또한 통역에게 귀화 이야기를 가볍게 꺼낸 적이 있음을 언급하며, 아직은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았지만, 가능성 자체는 열려있음을 분명히 했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한국계 3세' 라셈, 한국 귀화 추진 가능성은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2025-2026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지명을 받은 레베카 라셈(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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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만마(千軍萬馬) 혹은 설중송탄(雪中送炭)
일각에서는 라셈이 국가대표 전력에 큰 도움이 될 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사실 공수 겸장이라 보기도 어렵고, 결정력 부족으로 교체당한 적도 있으며, 블로킹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라셈이 국대에 합류한다면, 김연경과 양효진이 은퇴한 상황에서 단번에 최장신 자리를 차지한다. 이제 적지 않는 나이에 계속 아포짓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정아가 결정력에서 조금은 낫겠지만, 어쨌든 유럽리그가 아니어도 그리스, 푸에르트리코에서 경력을 쌓으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도 중요하다. 나이도 27세.. 강소휘와 동갑인데.. 이 세대 중 3~4년간 기량이 뚜렷하게 향상된 아포짓이 있긴 한가.. 아니, 국대에서 박정아 다음으로 아포짓 자리를 메워줄 만한 아포짓이 리그에서 아포짓으로 뛰고 있기는 한가...
김연경과 친구들이 은퇴한 후로, 끝없는 연패기록을 이어가던 국가대표팀과 그 안에서 답을 못찾던 아포짓, 아웃사이드히터 자원들을 생각해 보면, 유럽리그 주전급이 아니라지만 라셈이 실력으로 대표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물론 대표팀 전력 자체를 한 단계 올려줄 천군만마는 아닐지라도, 큰일 난 상황인 대표팀에 하나라도 구멍을 메워주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의 시간
사실 대단한 움직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보도한 연합뉴스에 일단 배구팬으로서 감사해야할 것 같고... 이제는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 그리고 흥국생명 구단이 진짜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국가대표팀은 대한배구협회가 관할하지만, 국가대표팀 경기력이 떨어져서 배구 인기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면, 협회도 욕을 먹고, 연맹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다른 종목이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던 남자농구 라건아 케이스를 살펴보자. 연맹도 협회도, 소속구단도 이 연대책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는 한국을 떠난 라건아가 귀화선수로 남자 국가대표팀 골밑을 책임질 때도... 리그 소속구단이 외국인선수 TO를 소진하며 라건아를 보유하고, 국가대표팀 수당까지 부담하는 형태로 운영했었다. 그래서 소속구단이 라건아보다는 다른 외국인을 찾을 정도로 라건아 기량이 떨어지자, 연맹은 가차 없이 라건아를 외국인 대우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아마 라건아가 국내선수로 대우받으며, 리그에 잔류해서 외국인 팀메이트 선수와 골밑을 공략했던 리그 밸런스가 붕괴되었을 가능성은 높다. 그래서 프로구단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연맹은 국가대표팀 전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하고, 오랜 기간 국대로 뛴 라건아 예외 지정도 나름 타당성이 있음에도 포청천급 원리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한국 농구 - 라건아 다음을 생각하다
(출처: 대한농구협회 홈페이지) 남자농구 대표팀 안준호 호가 걱정했던 것에 비해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아시아컵에서 호주에게 지고, 태국한테 이긴 결과가 높이 평가할 일인지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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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은 구단이 내고, 연맹은 귀찮은 일을 하고, 협회는 연맹과 구단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복잡한 상황인데, 이 중 소속구단은 흥국생명은 라셈 귀화에 적극적일 가능성이 낮다.
규정상 라셈이 귀화하면, 한국인 신분으로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해야 한다. 흥국 입장에서 낮은 순위지만 큰 기대를 가지고 선발한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행정처리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아니면 라셈을 라건아 케이스처럼 외국인 선수로 보유하면서, 국가대표 차출 등에 협조해야 하는데 이는 오히려 팀 전력에 마이너스가 된다. 라건아는 남자농구에서 탑 센터였기에 소속 구단들이 많은 부담을 감수하고 외국인 선수로 기용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속구단이 대표팀 출전수당까지 부담했다) 흥국생명이 이런 부담까지 감수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연맹 또한 별로 당장 가시적 성과는 없고, 회원 구단들 눈치를 봐가며 입장을 조율해야하는 복잡한 행정처리를 해야 한다. 지난번 모랄레스 감독의 해외 리그 겸직 사태 때도 전임감독을 위한 지원금을 협회가 허투루 쓰고 있는 것 아니냐며, 연맹은 강하게 반발했는데, 혹시나 지원금이라도 더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촉각을 곤두세워도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협회는 라셈이 귀화해주면 설중송탄 정도 도움이 된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만, 돈이 없다. 남녀배구 전임제 감독 도입을 위해서도 연맹에 손을 벌려야 했던 건 잘 알려져 있고, 반대여론과 무관심이 교차하는 상황에서도 오한남 협회장이 재신임된 것도 결국 오 회장의 재력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냉정하게... 아마도 이제부터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다가.... 또 라셈이 한국을 떠나고 팬들만 그리워하다가 과거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복잡하고 돈 많이 들어가는 일을 주도할 조직도, 돈 나올 곳도... 그리고 앞장서줄 사람도 없어 보인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라셈이 KOVO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서, 팬들의 귀화 여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 밖에 없다. 사실 라건아 귀화도 라건아가 공개적으로 귀화를 희망하면서,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하냐라는 비난 여론과 국대팀의 연이은 졸전이 겹쳐지면서 성사된 것임을 생각해 보면, 일단 가장 중요한 라셈이 라건아급 활약을 보이는 것이다.
배구팬으로 라셈이 활약해주길 바라야 하는 이유가 하나 늘어난 건 즐거운 일이다. 워크에씩도 훌륭하고, 출중한 미모에 한국 혈통도 가지고 있는 이 선수가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KOVO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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