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현대자동차가 뉴그랜저를 출시해서 화제가 되었죠. 여러분들은 뉴그랜저의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호불호가 많이 갈릴텐데 저는 무조건 "호" 입니다! 과거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향성을 레트로 퓨처리스틱 디자인(Retro Futuristic Design)이나 혹은 레트로 퓨처리즘(Retro Futurism)이라고 하는데, 뉴 그랜저는 옛날 각그랜저의 디자인을 여기저기 심어서 과거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잘 버무리고 형상화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리고 전면부와 후면부의 수평적이고 매우 얇은 라이트 이미지가 지금은 너무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않아 이 시그니처 디자인은 단연코 타 브랜드들과 다른 독보적인 현대만의 이미지를 구축할 때 큰 도움이되리라 예상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1세대 비틀에 대해 마저 이야기하고,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또 다시 세계적인 아이코닉 디자인으로 등극하는데 성공한 2세대, 3세대 비틀에 대해서 다루어볼까 합니다.
1세대 비틀은 1967년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게 되는데요, 미국에서 인기가 서서히 높아지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이름붙인 비틀이란 애칭이 곧 본명이 됩니다.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미국편 자동차 글에서도 다루겠지만, 1960년대의 미국 자동차 시장은 중형차가 대세로서 당시 미국 자동차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다고 하죠. 이러한 미국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정말 딱정벌레마냥 "쬐끄만" 비틀의 등장은 미국인들에게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당시 자동차 Big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를 중심으로 선이 굵고 깨알같은 디테일로 무장한 자동차들을 생산했었죠. 이들이 위치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는 당시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일본과 접전을 벌일 정도로 부유하고, 또한 낭만이 흘러넘치던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그 시대의 시간에서 올스톱한 동네가 되고 말았지만요. 아무튼 당시 미국 자동차의 유행과 다른 비틀만의 특색 덕분에 1세대 비틀은 미국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비틀이 미국에 상륙한지 1년만인 1968년에는 무려 56만여대가 팔렸다고 하죠.
당시 폭스바겐은 미국시장 마케팅을 위하여 "작은 것을 생각하라!" (Think Small)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는데요, 이런 문구가 뜻밖에 미국 사회에 먹혀들어갔다고 하네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 냉전의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이 공산주의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성장 주도형 발전이 미덕이자 곧 정의가 되던 시절이었다고 하죠. 하지만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자, 그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한 베이붐 세대들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항적인 분위기가 점차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틀의 기가 막힌 타이밍의 미국 진출은 새로운 세대들이 환호할 만한 큰 사건이 된 셈입니다.
무엇이든 크고 화려한 것을 선호했던 당시 미국의 소비 문화와 기성의 권위에 당당히 도전하는 이미지를 넘어서서, 점차 반항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반전 및 평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 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1969년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은 그러한 분위기에 정점을 찍습니다. 반전, 평화를 필두로 미국의 젊은 층에 급속하게 히피 문화가 확산되는데, 그들 특유의 보헤미안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비틀이 좋은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당시 비틀 위에 알록다록하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재에도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서 아직도 미국의 많은 곳에서 비틀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자동차 아트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 반전과 평화를 부르짖던 젊은 세대들은 불과 20여년전에 비틀이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나치의 기동 차량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비틀을 전세계 시장에 판매하여 얻어진 막대한 자금은, 폭스바겐이 2차세계대전 후에 회생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더 나아가 독일 경제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1세대 오리지널 비틀은 이렇게 1938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1998년 2세대 뉴비틀이 발표될 때까지 거의 디자인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대로 생산되었습니다. 1세대 비틀이 가진 독특한 디자인은 앞이나 뒤 옆 모든 방향에서 보아도 그 귀여운 모습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2003년까지 65년의 기간 동안 무려 2,150만 대가 생산되었고, 1세대 비틀의 생산이 독일에서는 이미 종료되었어도 여전히 제3세계에서의 인기가 대단했기에 중남미 등지의 폭스바겐 공장들에서는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폭스바겐 최초의 해외 생산 공장이 위치한 멕시코에서 마지막으로 생산 종료가 될 때까지 1세대 비틀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자동차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한편 비틀은 폭스바겐이 어려움에 빠질때마다 이를 벗어나게 해준 효자 역할 역시 톡톡히 했습니다. 1세대가 저문 후 2세대 뉴비틀을 1998년에 출시하게 된 것은 1990년대 극심한 적자에 허덕이던 폭스바겐을 기사회생시키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았습니다. 2세대 뉴비틀은 앞서 폭스바겐 6편에서 소개한대로, 폭스바겐을 다시 살려낸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작품입니다. 1990년대 초반 폭스바겐은 회사가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하자, 회사를 구원해줄만한 특급 인재를 찾아 나섭니다. 폭스바겐의 눈에 든 것은 바로 페르디난트 피에히. 그는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로서 1960년대 말에 포르쉐의 제품 개발 담당을 맡아 일했습니다. 그는 회사의 존립을 담보로 하여, 포르쉐917 레이싱카를 완성해내고 이를 토대로 르망24시 대회를 연이어 제패한 열정의 이력을 가지고 있죠. 레이싱 대회에서의 뛰어난 성적으로, 포르쉐를 전세계에 알린 큰 공로가 그에게 있었지만, 성공 뒤 포르쉐 내에서 후폭풍이 장난 아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우려한 외삼촌이자 포르쉐의 회장 페리 포르쉐의 (포르쉐 박사의 아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젝트를 밀어붙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것은 포르쉐 가문 내의 심각한 권력 다툼의 원인이 되었고, 그는 결국 포르쉐에서 쫓겨나 폭스바겐 산하 아우디에서 백의종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우디에 합류한지 10여년만에 보여준 성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특징없이 평범했던 브랜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는 저력을 보여준 끝에 그는 아우디의 회장의 자리에 까지 오르는 성공 신화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능력자 페르디난트 피에히에게 폭스바겐이 그룹 차원의 리더가 되어 달라고 구원의 요청을 보내게 된 것은 숙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자손 중에 외할아버지 포르쉐 박사를 꼭 빼어 닮아서 자동차 시스템과 역사를 너무나 잘 아는 그는 폭스바겐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1세대 이후로 단종되었던 비틀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탁월한 판단으로 폭스바겐은 컨셉카 개발을 시작하고, 드디어 1994년 미국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컨셉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비틀을 공개하게 되죠.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많은 관심을 받자 4년여의 추가 개발 기간을 거쳐 드디어 2세대 뉴비틀을 1998년 출시하게 됩니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그야말로 옛날의 향수를 자극한 마케팅에 힘입어 전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됩니다.
2세대 뉴비틀은 또 다른 폭스바겐의 성공작 골프의 엔진과 플랫폼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엔진이 전면부로 이동했지만, 옛 딱정벌레 차의 환상적인 비율은 성공적으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좀 더 깔끔한 선과 곡면 처리로 인해 세기말의 현대적인 감각과 최신 유행도 함께 품게 되죠. 그렇기에 2세대 뉴비틀은 레트로 디자인과 현대적인 트렌드가 절묘하게 결합된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불리웁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과거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향성을 레트로 퓨처리스틱 디자인(Retro Futuristic Design)이나 혹은 레트로 퓨처리즘(Retro Futurism)이라고 하는데, 2세대 뉴비틀은 레트로 퓨처리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아이템이죠.
1세대가 세계대전 이후 국민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저렴한 차였다면 2세대는 패션을 중요시 여기는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모델이었습니다. 뉴비틀은 한국에도 진출하여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감각적인 색상 덕분에 도로에서 많이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 주위에도 노란색 비틀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무척이나 부럽더군요. 한 번만 태워주지...
비틀은 최종적으로 3세대까지 발전하였습니다. 3세대 비틀은 2011년 선을 보였습니다. 2세대 뉴비틀과 전체적인 외관은 비슷하지만 이전 세대에 비해서 좀더 스포티한 역동성을 가미하여 남성적인 느낌을 더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루프라인도 길어지고 수납공간도 약간 늘었습니다. 그러나 비틀만이 가진 공기역학적이고 아름다운 곡선의 아이콘 디자인이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왜냐하면 원래의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다 보니 차량의 공간활용을 제한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2010년대 와서는 동급 경쟁 차종 중에 훨씬 더 세련되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모델들도 많이 나온 탓에,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3세대 비틀은 서서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비틀은 2018년 영화 범블비 출연을 끝으로 총 82년의 긴 역사를 마감하고 결국 2019년 단종됩니다. 영화 범블비 다들 보셨나요? 영화에서는 1967년형 비틀이 순식간에 로봇으로 바뀌는 재미난 장면들이 많이 나오죠. 사람들이 기존에 오리지널 트랜스포머로 당연스레 생각하던 차종은 노란색 셰비 카마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노란색 비틀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서 허를 찔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틀의 등장이 전체적인 영화 스토리와도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구요. 왜냐하면 기존에 등장했던 초 거대 트랜스포머들 보다 훨씬 체구가 작은 덕에 비틀 변신로봇은 좀 더 인간 친화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이 폐차장에 찾아가 비틀을 달라고 간청할 때 주인 할아버지는 무심하게 가져가~라고 이야기하죠. 주면서도 그다지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1세대 비틀은 전세계에 무려 2천만대 이상 팔렸었으니, 폐차를 포함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중고 비틀도 어마어마하게 많겠죠. 한때 남미 등지에서는 비틀 중고차 한 대가 단돈 4백불에도 팔렸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해서 두 차례에 걸쳐 시대의 아이콘이자 폭스바겐을 두 번이나 되살렸던 구세주 자동차 비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글들을 읽고 나서 앞으로 길거리에서 비틀을 발견하신다면 이전보다 비틀이 좀더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비틀의 탄생지이자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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