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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SWAGEN 04. 내겐 은인이 있답니다... - 전후 폭스바겐의 재도약

꿈꾸는 차고 2022. 12. 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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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이 정부에 의해 설립된 자동차 회사이기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수사업으로의 진출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앞의 3편 글에서 서술한 것 처럼 차량 인수 대기자 30여만여명을 모집하고도

2차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나치는 완납자들에게 비틀을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정권이 무서워 귀중한 돈을 떼여도 반발하지 못했던 평범한 독일 국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나치는 대신 국민들에게 인도되지 못한 비틀의 사용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리고 포르쉐 박사를 다시 한번 부르게 되죠.

이번에는 그에게 비틀의 경량 플랫폼을 개조하여 전쟁에 쓰일 수 있도록

군수 기동차량을 만들어 낼 것을 요청합니다.

 

연구에 돌입한 폭스바겐은 곧 큐벨바겐 (Kübelwagen)이라는 군용차량과

쉬빔바겐 (Schwimmwagen) 이라는 수륙양용 차량을 개발하여 나치에 공급하였습니다.

이 둘 모델은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 북아프리카나 러시아 전선 등

나치가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는 전투지역이라면 어느 곳이나 배치되어 활용되었습니다.  

 

독일 국민들의 복지 향상을 목표로 개발된 비틀이 다른 국가들을 겨누어

전쟁을 수행하는 도구로 변신했어야만 하는 역사가 너무 가혹하네요.

 

Kübelwagen (출처 : commons.wikimedia.org)
Schwimmwagen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큐벨바겐과 비슷했던 자동차를 LA 인근 거리에서 몇 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동차가 비틀과 뼈대를 공유한 배다른 형제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폭스바겐은 정부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기에 정부의 명령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겠죠.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간에 그들은 전범 기업의 처지가 되었지만

어떻게 종전 이후에도 살아남아 독일의 국민 자동차 기업으로 부활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폭스바겐은 군용차량의 원활한 생산을 위해 포로수용소에서 차출된

약 2만명에 해당하는 인원을 강제 노역에 이용한 사실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전범 기업이었기 때문에 전쟁 배상의 명분으로 승전국들로부터

공장 설비들이 모두 뜯겨 압수 당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폭스바겐에는 천운이 따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드라마틱하게도 그들은 결국 살아남아서

본연의 모습인 국민차 기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원래 처음에는 독일에 진주한 소련군이 폭스바겐 공장을 철거하기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포기하고 폭스바겐 공장 지역은 미국군의 관할에 들어갑니다.

다시 한번 관할이 변경되어 최종적으로 폭스바겐 공장은

영국의 점령군 사령부가 최종 처리를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폭격을 입은 폭스바겐 공장 (출처 : REX FEATURES)

 

여기서 큰 반전이 일어납니다.

철거를 지휘하기 위해 부임한 영국군 담당자인 이반 허스트 (Ivan Hirst)소령은

어찌된 일인지 공장을 철거하는 대신 이미 전쟁으로 파괴된 설비들을 복구하고

계속 공장 운영을 하도록 영국 사령부에 허가를 요청합니다.

영국의 점령 지역 내에서 긴급한 운송 수요가 발생할 때

이를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 폭스바겐의 자동차 생산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가 영국 점령군 사령부를 설득한 결과였습니다.

 

이반 허스트 소령 (출처 : www.volkswagen-newsroom.com)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죠.  

이러한 지원 아래 폭스바겐은 파괴된 공장을 재건하고

이번 만큼은 "비틀"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폭스바겐이 어느 정도 정상화 되자, 마냥 점령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영국군 사령부는

사실 폭스바겐을 다른 국가 자동차 회사들에 매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폭스바겐을 확인하러 실사에 참여했던 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폭스바겐을 둘러보고는 별 가능성을 느끼지 못한 탓인지 모두 인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천운이 찾아온 것이죠. 

 

매각의 방식으로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하자 영국군은 할 수 없이

독일의 주 정부에 폭스바겐 운영 권한을 이양하게 됩니다.

드디어 폭스바겐이 독일의 독립 브랜드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반 허스트 소령은 도대체 어떠한 마음으로 폭스바겐을 살리려고 했을까요?

그 속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전후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독일의 주민들에게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장의 철거로 인해 폭스바겐에 고용된 수만의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다면 그에 딸린 식구들이 길에 나앉는 것은 시간 문제였겠지요. 

한편 이반 허스트 소령의 생각에 폭스바겐 공장이 그저 철거하여 없애버리기에는

뛰어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폭스바겐은 이렇게 폭스바겐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해준 이반 허스트 소령의 공적을 기려서

현재에도 그의 이름으로 매년 회사의 우수 사원들에게 상을 수여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공장 내에는 그의 이름을 붙인 거리도 조성했다고 하네요. 

 

1949년 폭스바겐 공장의 비틀 생산 라인 (출처 : GETTY)

 

이제 회사의 복구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고, 

재건된 공장에서 생산되는 "타입1 비틀"이 전세계적로 수출되고 팔리기 시작하면서

폭스바겐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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