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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32. 사무실과 현장... 당신의 선택은? – 정몽구 회장의 뚝심경영 이야기 (8)

꿈꾸는 차고 2024. 6. 2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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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32. 사무실과 현장... 당신의 선택은? – 정몽구 회장의 뚝심경영 이야기 (8)
 
드라마 "미생"이 방영된지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그 당시 정말 큰 인기를 끌었었죠. 저 역시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대리까지 해본터라 미생 방영 중에는 감정이입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의 캐릭터 그리고 회사 상황들도 어찌나 저의 옛 한국 직장 시절과 비슷했던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 미생 (출처 : dh.aks.ac.kr)

 

 
미생의 매 화가 재미났지만 그중에 제가 꼽는 명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장그래와 동기 한석율이 대회의실에서 맞붙었던 토론 배틀인데요, 그들은 "기업에서 현장근무란 무엇인가 ?" 그 정의를 두고 설전을 벌입니다. 한석율은 사무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현장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현장 근무자가 작업할 때 무거운 공구가 떨어지면 발등이 "아작" 날 수 있다며 전투화야말로 현장근무를 상징하는 신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장그래는 사무실 역시 제품을 탄생시키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업무가 치열하게 이루어지며, 제품의 기획과 고객 대응도 중차대한 업무인 만큼 사무실 역시 현장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칩니다.

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장그래와 한석율의 토론 배틀 (출처 : 유튜브)


 
 
장그래의 의견도 물론 맞는 말이지만, 저는 한석율의 시각이 더욱 설득력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신입사원 시절 부산에서 현장업무를 해봤던 사람으로서... 저보다 오랫동안 현장근무를 했던 동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업무지식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엄청난 내공과 에너지를 발산하더군요. 일반 사원이 인사, 재무, 고객 응대는 물론, 현지 업체와 노무자를 상대하는 기술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처음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게된 동기들은 사무실에서 주로 서류와 전화를 다루며 일을 했기에... 현장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헤메는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일반 사원들이라면 사무실 근무 먼저 하다가도 순회발령을 통해 현장을 경험할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하지만, 만약 이것이 2세 경영인의 문제라면 좀 달라지죠. 대부분 오너 일가 2세 경영인들은 첫 보직부터 낙하산처럼 높은 직급에 모두가 선망하는 본사 사무실의 업무가 기본이니... 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진짜 현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때론 여러 변수가 수도 없이 생기는  회사경영에서... 만약 경영인이 현장의 의견과는 딴판으로 엄한 결정과 독촉만 내린다면... 그야말로 직원들은 고역이요, 회사 경영 역시 잘 유지될 수가 없겠지요. 
 
 

 

사무실 본사 근무 이미지 (출처 : 미리 캔버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이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현장 근무로 경력을 시작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래도 그는 정주영 회장의 재벌가 둘째 아들인데 그럴리가? 하고 궁금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다른 형제들과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정몽구 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직장마저도 아버지가 처음부터 임원으로 낙하산처럼 꽂아준 것이 아니라, 아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 상황이 답답했던 어머니 변중석 여사가 나선 덕분이라고 하네요. 어머니가 서울사무소장을 찾아가 요청을 한 끝에 정몽구 회장은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이 대부분 해외유학파 출신임에도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어찌된 셈인지 정몽구 회장에게 유학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구요. 이처럼 정몽구 회장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맨땅에 헤딩식으로... 자신의 갈길을 스스로 찾아갑니다.
 
 

 

젊은 시절의 정몽구 회장 (출처 : 매일경제)

 
 

 
그리고 정몽구 회장은 다음 해 현대자동차로 옮겨서 부품과장, 자재과장 등을 거쳐 1973년 이사로 승진했습니다. 1974년에는 현대자동차서비스 사장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가 이곳 현대자동차서비스를 이끌었던 24년 동안이 그가 "현장경영"을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이미 수년간 바닥에서부터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게 된 뒤에도 무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부품 수급 및 수리 등의 품질 관련 문제들, 그리고 대인 서비스 방식 등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현대자동차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고객의 불만이 무엇이고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를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1970년대 당시...  그의 현장경영 시절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그는 현장경영을 통해 당시 애프터서비스 업계의 부조리 개선에 앞장섰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창 경제개발에 여념이 없던 격동의 1970년대. 그 시기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법천지의 세상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법규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하기싫으면 그만, 이렇다 할 서비스 문화도 없었고요. 그리고 각종 부정부패가 공공연히 자행되어도 눈감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회사 내 기강도 엉망이었고요. 감시가 덜한 상황을 틈타 부품을 슬쩍하는 직원들, 지인에게 무료나 저렴한 서비스료를 받고 업무를 수행해주는 등... 각종 부조리와 편법이 일상화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이 누구인가요? 회사의 밑바닥에서부터 온갖 상황들을 경험해온 정몽구 회장은 칼을 빼들었습니다. 서비스다운 서비스를 직원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본인부터 앞장섰고, 직원들에 대한 평가와 상벌을 확실히 구분하며 회사의 균형을 잡아나갔다고 합니다.
 
 


1970년대 중반 서울 중심가 (출처 : 한겨레)

 
 
 
정몽구 회장의 솔선수범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그는 놀랍게도 직접 정비 차량에 탑승하여 순회정비를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당시만해도 부품 수급이 원만하지 않아서 그는 직원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자동차부품을 공급했습니다. 순회 활동 중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현장을 도는 업무를 계속 했습니다. 이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는 수많은 현장 상황을 통해 사무실에서 서류만 쳐다봐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디테일들을 인지할 수 있었고 이를 바로 해결하는 직관력을 키워나갑니다. 이렇게 정몽구 회장 스스로 현장의 밑바닥에서 직접 자재를 다뤄 보면서 품질과 현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현장 경험은 그의 향후 경영활동에 큰 자산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1970년대 현대자동차가 독자개발한 중형트럭 바이슨 (출처 : 모토야)


 
 
 
그렇다면 정몽구 회장의 회식 스타일은 어떠했을까요? 기업 오너의 회식을 떠올리자면... 고급요정이나 어두운 조명의 럭셔리한 살롱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의 현장경영에는 직원들과의 긴밀한 소통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과 격의 없는 삽겹살 파티를 즐겨했다고 하네요. 그것도 실내 가게가 아닌 임시 드럼통을 놓고 말입니다.

당시 회사의 정비공장 서비스센터가 있었던 서울 원효로 3가. 지금은 현대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소 공사가 한창인 곳입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공장 앞에서 쓰다만 드럼통을 바베큐통 삼아 직원들과 삼겹살을 먹으면서 그들로부터 진솔한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될 때는 함께 족구도 하구요. 그리고 트럭을 타고 전국 순회 부품 서비스를 끝내고 돌아올라치면 회사 앞 수퍼에 모여 앉아 직원들과 술한잔을 기울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늦으면 인근 친구 아파트에서 자고 출근을 하기도 했지요. 마치 무서운 임원보다는 소탈하고도 강단이 넘치는 형님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드럼통 이미지 (출처 : 쿠팡)


 
 
어느새 나이가 든 지금, 이제 더이상 직원들과 그렇게 소통하기는 어렵지만, 정몽구 회장이 현장의 곳곳에서 직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방식 만큼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가신처럼 부하 임원들에게 하루종일 둘러싸여 있는 여느 회장이나 재벌총수들과는 다른 모습이지요. 대기업 총수였음에도 그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출범한 직후인 2001년부터 신입사원 연수에 반드시 참여하여 신입사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덕담 및 당부를 한다고 합니다.

신입사원들에게 회장이라는 존재는 자주 뵐 수도, 말을 걸기에도 어려운 부담스러운 인물인데도 그가 직접 신입사원들과 접촉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그는 신입사원들에게 자신감 부여 및 애사심을 키워줌으로서 그들의 회사 충성도를 높이고 그룹의 미래를 간절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신입사원 때의 이러한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고 소중한 순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과거의 흔한 신입 대졸공채 연수 장면 (출처 :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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