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독서18 - 역사의 오른편 옳은편(2020, 벤 샤피로)

마셜 2023. 7. 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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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기를 거듭하다가, 오랜만에 가진 독서모임. 그간 지나왔던 장마와 폭염만큼이나 책 또한 무거우면서도 피로한 책이었으니, 바로 벤 샤피로의 '역사의 오른편 옳은편'이었다. 

 

 전에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블랙 아웃'의 캔디 오웬스만큼이나 날리는 젊은 보수 논객, 벤 샤피로가 심혈을 기울여 책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책을 읽은 넷의 공통적 반응은 모두 '실망'이었다.

 

출처 : 교보문고

 책을 추천했던 이는, 유튜브에서 봤던 5분 동영상이 훨씬 재미있고, 이해가 잘 되었다며,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말을 잘하는 분이 책을 왜 이렇게 어렵게 썼는지...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추천받아 본 유튜브 5분 영상의 벤 샤피로는 참 잘 생겼고, 참 말도 잘하며, 거대 화두에 대해서도 확신에 차서 선명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사회주의 실패원인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는 바램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는 지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사회주의가 왜 실패했는지는... 굳이 이런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지만...)

 

 

 

 시종일관 서양문화(그리스문화+유대그리스도교)의 우월함과 승리DNA를 피력하는 저자는 적어도 동양인들에게는 많은 불편함을 선사한다. 이는 이해의 문제를 넘어선 공감의 문제로.. 제국으로 떠오르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중국과 우리에게 오일머니를 뿌려대며 부국으로서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중국, 그리고 우리 옆에서 먼저 산업화를 이루며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본까지.. 모두 벤 샤피로가 말하는 서양문화와 (한국보다도) 거리가 먼 나라들이기에... 그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뭔가 와닿지 않는다. 

 

 즉, 서양의 문화 자체가 '위대한 승리'로 특질지워졌다면, 지금의 전 세계구도는 결과적으로 맞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 없이, 연역적으로만 서양문화의 승리를 빌드업하는 것은 도전정신은 높이 살 수 있겠지만,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 유대-그리스도교에 대한 설명

 2. 그리스로부터 출발하여 현대로 이어진 철학사

 3. 붕괴된 사회주의의 핵심이었던 맑스주의 해체

 

 차라리 책을 첫번째 부분을 한 권으로, 그리고 나머지 내용을 한 권으로 나누어.. 두 권으로 각기 출판했다면 오히려 독자가 받아들이는 이질감은 덜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대-그리스도교와 그리스철학에서 출발한 민주주의가 골든크로스로서 서양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게 벤 샤피로 주장의 핵심이니... 이런 내 생각이야말로 저자 시각에서는 불경스러운 발상일지도...

 

 멤버의 전언을 들어보니, 옮긴이는 유명한 목사분의 동료로서, 본인이 직접 벤 샤피로에게 연락하여 번역을 진행했다고 한다. 덕분인지 전반적 번역수준과 친절한 각주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뒷받침한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웠을 책에 뛰어든 번역가의 노고와 에너지도 살짝 짐작되는 부분. 어쨌든 덕분에 미국의 젊은 우파가 느끼는 위기감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번역가 노태정 씨에게 감사해야 할 부분이다. 

 

 학생 때야 무모하게 혹은 반강제로 (정치)철학에 대한 책을 읽곤 했지만, 이렇게 정치철학을 총망라하듯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기억 속에 파편적으로 남아있던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다시 떠올려본 것은 살짝 행복한 경험이었고, 그나마 조각조각 남아있던 지식들 덕분에 에드워드 사이드도, 홉스도, 콩트도, 안토니오 그람시도 이해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런 학자들의 이름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독서가 몇 배 힘들었을 터, 여러모로 도전정신을 가져야지만 완독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의 중후반부에서 자주 나타나는, 엄청난 정도의 요약과 의견 피력은 다소 위험해보이기도 한다. 책 250p에 보면, '관료제라는 유토피아'라는 설명 하에서, 막스 베버가 '관료제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지식에 기반한 통제의 행사"를 주장했다면서, '자신들이 모든 일에 통달했다고 착각하는 관료 패거리들의 하향식 통치는 개인의 권리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킨다'라고 비판한다. 거의 100년 전 관료제라는 사회제도의 개념을 정립하여,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것에 큰 기여를 한 맑스 베버의 연구를 이렇게 간단히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신선했고, 놀랍다. 

 

 샤피로의 맑스 베버의 관료제에 대한 비판은 한 가지 예로, 책 전체적으로 유사한 비판이 많다. 문제는 이런 식의 축약된 비판은 반대 진영에게는 바로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 미국의 젊은 우파를 대표하는 샤피로가 이런 생각을 가진 것에는 더 많은 학습과 깨달음이 전제되었을 텐데, 하나하나의 비판에 더 자세한 설명이 붙었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대학에서 1년간 강의를 해야 할 정도로 양이 방대해지겠지만 말이다. 

 

 유대인이자, 그리스도교의 우월함, 효율성을 확신하는 샤피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아니 사실 그 전부터 궁금했다.

 

 유일신 신앙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책을 어렵게 다 읽었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런저런 종교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난 적어도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너도 나도 똑같이 말할 수 있고,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왔는데... 교회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발달에는 큰 기여를 했지만, 앞으로 계속될 민주주의에도 긍정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트랜스젠더와의 TV 대담에서 난장판이 된 사례는 흥미로웠다. 유튜브에서 해당 동영상을 볼 수도 있다는데, 책 내용만으로도 사태의 긴박함과 황당함을 알 수 있어서 생략했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던지라 잘 몰랐는데, 미국의 LGBT가 여러모로 이슈가 되는 모양이다. 민감한 문제이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LGBT가 왜 사회에 부정적인지를 설명하려면 보다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 

 

 성경 가르침에 의한 것이라면 나 같은 비신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가르친다면, 나 같은 아시안들은 더 귀를 닫게 될 것이다. 

 

 적어도 사회 주류는 아닌 그들이 왜 소수자로서 이런저런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이야기하는지, 그리고 그런 주장이 왜 문제인지를 이야기하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더 차근차근 설명해야할 것이다. 

 

 

 책을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은데, 각종 철학자, 사상가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도 높이 평가되어야할 부분이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풀어내는 것은 특히 '공인'으로서 쉽지만은 않았을 일이다. 캔디 오웬스가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그 존재로서, 본인 주장에 더한 설득력을 얹을 수 있다면, 샤피로는 유대인으로서 백인으로서, 남성으로서 그런 면에서도 불리함에도 본인 처지에 호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체계를 설명하려 한 것 또한 대단한 용기이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 대선에서 딱히 트럼프를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하던데, 앞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행보를 걸어갈지 기대되는 면도 있다. 언젠가 샤피로가 크게 환영하는 정책이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일지 꼭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책 말미에 있는, 저자와 아내가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 기본적 사실 네 가지를 옮겨적어본다. 

 

 첫째, 너의 삶에는 목적이 있단다. 

 둘째, 너는 할 수 있어. 

 셋째, 네가 누리는 문명은 특별하단다. 

 넷째,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야. 

 

 샤피로는 모두가 형제자매임을 설명하면서, 에이브러햄 링컨을 인용했는데, 지금의 미국 우파가 포용할 수 있는 형제자매가 누구까지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ps. 혹시나 미국의 젊은 보수의 생각이 궁금하여 이 책을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캔디 오웬스에 먼저 도전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바이블을 통독하기 전에는 입문교재도 읽고, 간단한 팸플릿도 읽어봐야 하는 법. 캔디 오웬스의 수기 같은 글이 재밌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샤피로의 이 책에 도전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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