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년 - 전쟁 덕후

EU의 앞면과 뒷면 - 인류가 '세계평화'를 위해 뭘했는지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면 'EU를 만들었다'고 답한다.

마셜 2024. 12. 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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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동희, 이철원, 오태현, 이현진, 임유진(2017), 『브렉시트 이후 EU 체제의 전망과 정책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책연구 브리핑」, 2017.1. )

 
 서양사에 대해, 분명히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 일 모르는 법... 돌고돌아 계속해서 서양사 관련으로 이런 저런 책을 읽고 논문도 찾아보고, 부족하나마 이런저런 글을 쓰다보니, 그 전에는 잘 몰랐던 한국사와 서양현대사의 관련성도 눈에 많이 보이고, 흔히 말하는 인류의 큰 몇 걸음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U(유럽연합)에 대한 공부도 그랬다. 한국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 치고 EU가 무엇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 역사와 의미를 깊이있게 생각해 본 사람도 아주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정도가 공부를 시작하기 전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는게 없으니, 일방향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까. EU 관련해서 사학계에서 연구가 활발하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운 건 맞았지만, 정치외교학, 국제정치학, 사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EU 관련 연구는 진행되어 있었고, 특히 비교적 최근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던 브렉시트를 기점으로 해서 다양한 연구와 분석이 나와 있었다. 
 
 늘 공부가 그렇듯이, 주제가 정해져서 파고들다 보면, 내 부족함에 한숨 짓게 되고, 그러다 어쩌다 발견한 문헌과 자료들에게 또 흥미를 느끼며 일을 벌리거나, 이것저것 더 손대어서 결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곤 한다. 
 
 EU 역사에 대한 공부도 비슷했다. 유럽통합과 유럽연합은 구분지어 설명되어야 한다는 점, 2차 대전 후,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통합이 강하게 촉진되었다는 점,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을 축으로 통합이 때로는 위기를 맞으며 단계별로 진행되었다는 점, 그래서 현재는 유로라는 단일 통화와 공동 국경 인정에 이르렀다는 점 등이 모두 중요했지만, 뭔가 더 있지 않을가 라는 생각에 뒤적이는 문헌들은 마감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뭐하고 있는건가... 뭔가 멍해지게 만들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정신이 돌아오자... 먼저 제목을 정하자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내 멋대로 제목은 'EU의 앞면과 뒷면'으로 잡았다. 제일 먼저 보이는 앞면의 이슈은 '튀르키예와의 가입갈등'을 꼽았다. 지금 에르도안 대통령은 거침없이 EU를 비판하며, 가입노력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는 건 당연해보인다. 지금 연합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무슬림 이민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슬람 국가이지만 긴 시간 연합 가입을 위해 민주주의 제도 도입 등 많은 노력을 해왔던  튀르키예를 외면힌다면, 아마도 연합의 확장은 거기까지일 것이다.

뒷면의 이슈는 브렉시트이다. 연합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그저 배수진 정도의 정치적 도박이라고 생각했던 영국 카메론 총리는 연합으로부터 잔류를 조건으로 많은 양보를 얻어내고도 국민투표에서 져서 브렉시트로 사는 황당한 상황을 만들었다. 당연히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임했고, 그 후 오랜기간 영국은 탈퇴 과정을 두고 혼란을 겪었고, 어찌보면 그 혼란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갑자기 엉뚱하게 떠오른 탄금대 전투, 역시 정치에서건 전쟁에서건 배수진은 함부로 치면 안된다.
  역설적으로 영국이 탈퇴함으로서 연합 정책방향에 어깃장을 놓았던 리더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되었고, 연합은 외려 큰 소리를 치며 회원국들을 단속(?)할 수 있게 되었다. 브렉시트를 통해 당장은 연합 결속력이 강해졌으니, 카메론 총리는 독일과 프랑스 입장에서는 큰 일을 한 우방 정치인일듯.

사람들이 무엇보다 잘 알면서도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조약이 바로 '솅겐 조약'이다. 우리 국민의 유럽 내  이동이나 체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외교부 홈피에서도 친절히 안내하고 있는 이 조약은 26개 가입국이라는 규모도 대단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그저 차나 기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여러 나라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지금 유럽의 모습의 초석을 만든 국경 통행의 자유를 보장한 기본조약이다. 흔히 여행객들에게 유럽은 참 자유롭고 평화롭구나를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 아무 제지 없이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솅겐 조약은 단순한 개인의 이동의 자유 보장이라는 상징보다 큰 의미가 있다. 이 덕분에 연합 회원국에서 생산한 물품이 통관 등을 거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국경 검문을 폐지해서 뿐만은 아니고, 각국이 관세/통관 등 절차를 없앴기에 가능한 것이고,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만큼 연합의 한 공동체의 형태에 가까워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앞면과 뒷면, 거창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속에, 북한이 이 아사리판에 참전하고, 튀르키에도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형국에서, 유럽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더더욱 공고한 연합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정치/경제적 공동체인 EU와 함께 군사공동체로 늘 나란히 언급되는 NATO에 가입만 할 수 있다면, 빼앗긴 영토를 포기하고 휴전할 수도 있다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표가 바로 그러한 연합의 필요성과 위력을 대변한다. 

 결국 복잡한 이해관계와 정치적 명분, 반목의 역사를 넘어... 완전하지 않지만 통합이라는 길을 걸어 이 거대한 결과물을 낸 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것도 인류 본성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만약 인류를 초월한 절대자가 인류를 심판하는 날에 너희들이 평화를 위해 한 것이 뭐가 있느냐 라고 냉엄하게 묻는다면, 그래도 죽고죽이는 살육을 벌인 과거를 반성했기에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다시 싸울 가능성을 줄였노라 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공동체 한 쪽 끝에서 시작된 전쟁의 불길을 끄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전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이 연합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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