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상 45] 보랏빛 향기를 맡으면? "화사한 행복"이 느껴진답니다.

[미국 일상 45] 보랏빛 향기를 맡으면? "화사한 행복"이 느껴진답니다.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
"예쁜 두 눈엔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
강수지의 "보랏빛향기"~ 무려 30여년이 넘은 옛가요인데요, 하지만 가사가 참 이쁘죠?

 

엘에이 지역에 살다보니... 저는 매년 초여름이 되면 이 노래가 소환되곤 합니다. 어린 시절 참 많이 흥얼거렸는데 말이죠, 이 노래가 나온 것이 아마 90년도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수지의 대표곡이자 한때 많은 이들의 노래방 18번이었던 이 노래, 이 가사가 저에게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는??

 

바로 집 바깥에 나가면 온통 길거리가 보라색!!이기 때문이죠.

 

 

해마다 4월에서 6월이 되면 엘에이 지역 곳곳은 보라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데요, 이것은 보라색 꽃잎이 풍성하기로 유명한 "자카란다"라는 나무들 때문입니다. 이 자카란다들이 길거리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어서 초여름엔 엘에이 지역 어딜가든 보라색을 "흥건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한국은 가을이 되면 으레 노란 은행나무나 붉으스레한 단풍이 많잖아요? 이때문에 처음 엘에이에 왔을 때 저는 보라색의 꽃들이 잘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보라색도 그냥 보라색이 아니라 약간 형광빛이 가미된 색상이어서요~ 가끔 구름이 끼어 흐린날이라도 되면 이 보라색 빛은 매우 압도적인 입체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엘에이 생활 13년차인 제가, 이제 겨우 야자나무들의 이국적인 모습에 간신히 적응되기 시작했건만, 아직도... 이 보라색은 저에게 무척 이국적이고 신비하게 느껴지네요.

이제 6월 중순쯤되니 꽃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요, 그런데 주차해놓은 자동차 주위로, 그리고 아스팔트 길 위로 보라색 색종이를 뿌려놓듯 아름답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야말로 "꽃밭"인거죠. 하지만 짙은 색상에 비해 사실 향기나 꽃가루 이런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오로지 "치명적인 색상"으로 승부하는 자카란다 입니다~ 그래서 가로수로 인기인지도 모르죠. 한국의 대표 가로수인 은행나무가 노란색이 참 보기는 좋아도 "X내"가 좀 많이 나잖아요. ㅎㅎ

알고보니 자카란다는 엘에이 지역이 원산지가 아니랍니다. 원래 남미가 원산지이고 엘에이 지역에는  백오십여년전부터 엘에이 도심을 개발할 때 들여와서 식수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자카란다의 어원도 브라질 원주민의 언어에서 왔다고 하고요. 사실 알고보면 엘에이의 상징 키 큰 야자수도 옛날엔 엘에이 지역에 없었다고 해요. 이곳이 매우 건조한 사막 기후라 선인장들이 주수종이고 코요테들의 서식지였던 곳에 사람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던 것이죠.

 

 

 

엘에이 오렌지 카운티 지역 자카란다 나무 거리 (출처 : 핀테레스트)

 

 

 

 

 

자카란다의 꽃말은  "화사한 행복"이라고 하는데요, 직접 와보시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자카란다는 케냐의 국화로도 지정이 되어있어 "아프리카 벚꽃"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곳 엘에이 지역의 자카란다가 무척 유명해서 그런지, 자카란다가 심어져 있는 지역을 쉽게 지도로 찾아볼 수 있는 웹사이트도 꽤 많이 있습니다. 밑에 보라색 점들이 다 자카란다 나무가 심어져 있는 지역들이랍니다~

 

 

 

https://jacarandamap.com/

Map: Jacaranda trees in LA

엘에이지역 자카란다 서식 지도 [출처 : jacarandamap.com]

 

 

엘에이 지역 보라색 길거리 [출처 : 미주중앙일보]

 

 

 

 

그런데... 위 지도를 보니 특히 다운타운을 포함해서 이번 엘에이에서 대규모 시위와 집회가 벌어진 지역들과 묘하게 많이 겹치네요. 이번 주말, 엘에이 지역 곳곳에서는 데모와 집회가 다발적으로 벌어진다고 하는데요... 최근 뉴스를 보고서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저에게 연락을 많이 하네요. 엘에이 정말 괜찮냐고요. 올초에는 엘에이 서북쪽의 대형 산불로 인해서 한국의 지인들에게 걱정을 많이 드렸었는데요. 

 

보라색은 BTS의 상징색이기도한데, 펜데믹 직전인 2019년 BTS의 엘에이 방문으로 엘에이가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공연을 했던 경기장 주변은 그야말로 보라색 불빛, 보라색 깃발 그리고 평화를 외치는 공간이었는데요,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보라색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바라기는 부디 이번에 모든 일들이 평화롭게 잘 해결되어서, 예년처럼 엘에이 사람들이 걱정없이 "화사한 행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큰 불상사 없이 이번 일들이 잦아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엘에이 시위 현황 사진에도 어김없이 자카란다 나무가 있네요 [출처 :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