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독서모임 포스팅.. 아니 오랜만에 포스팅
이런저런 사정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긴 시간 쉬었지만, 독서모임은 꾸준히 참석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이게 '함께'의 힘이기도 하고, 작은 모임이지만 이끄는 입장에서의 호스트 역할에 대한 부담이기도 하다. 어쨌든 몇 달의 공백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독서모임에 대하 기록이 누락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모임 덕분에 다시 블로그로 돌아올 수 있었음에 감사함이 앞선다.
어렵게 어렵게 논문을 마무리했기에 역사책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새로운 책보다는 뭔가 편안하고... 밀렸던 숙제를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책이 지난 번에는 '남한산성'이었고, 이 번에는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였다. 책장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고른 책은 아니다. 긴 시간 가깝게 지낸 후배가 골라준 책이었고, 미술관 가는 걸 꺼리진 않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게 하나도 없는 날 배려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는 내게는 별 관심 없는 분야를 직접적으로 다룬 책이기도 했다.
책의 분기점이 되는 이슬람관
2023년도에 꽤 화제가 되었던 책이기도 하고, 선물받을 때 표지의 안내문을 유심히 본 덕분에, 주인공 브랭리가 미술관 경비원으로서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 안의 미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된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이유이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책이라는 뜻..
실제로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직업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된 계기가 된 형의 죽음, 그리고 늘 떨리는 첫 출근부터 광대한 미술관의 전시 배치까지... 많은 것을 잘 풀어내는 이야기이지만, 13장, 328쪽에 걸친 이야기가 모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미술관 만큼이나 끝이 없어보이는 명작 미술품들에 대한 설명에 문득 지친다라는 느낌이 들 때쯤... 이슬람관에 대한 설명이 긴 시간 수업 중 10분 휴식 선언처럼, 신선한 공기처럼 반갑게 다가왔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벅찬 국내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과 달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으니, 이슬람관이 있는 것도 당연한데, 이색적으로 다가온 걸 보면 나부터도 약간의 편견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이슬람관에 대한 이야기는 전체 13장 중 9장에 해당하니... 작가의 이야기에 익숙해졌을 책 후반부에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에도 적절했다.
기도를 해도 되냐고 경비원에게 정중하게 묻는 이슬람 방문객도 인상적이었지만, 16세기 수피아파의 더비시를 그린 그림의 문구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이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할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 믿지 않지만, 이런 근원적인 의문, 막막함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공감도 잠시..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생이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하는 게 삶이라 되뇌이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주의자이고, 바쁜 현대인이다.
고분의 한 칸, 거대한 기둥 하나, 방 하나 정도는 우습게 떼어와서 복원을 하는 스케일을 지적하며 한 멤버는 경탄했지만, 그리고 그러한 문화재 약탈 위에 미술관이 서 있음도 아이러니컬하다고 지적했지만, 비록 빼앗아온 문화이고, 이해하기 힘든 이국의 문화여도 절대자 앞에서 슬픔의 원천을 찾는 그 인간의 숙명은 시대와 문화를 관통하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 모양이다.
평범한 경비원은 아니었던 브랭리
뉴요커라는 잡지사에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었던 브랭리, 이렇게 설명해봐도 미술관 경비원 브랭리는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학교 과제 때문에 벌어지는 토론에 지쳐가던 여학생들 사이에 개입해서 너무 강한(?) 힌트를 주기도 하고, 명작 미술품의 역사적 배경을 깊이 파고드는 그는 분명 유니크한 존재이다.
물론 엄청난 수의 공무원이 관리하고 운영하는 미술관에는 당연히 미술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겠지만, 그 중에서로 루틴하고 안정적인 생황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브랭리는 결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됨으로서 본인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탄탄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위해 그가 틈틈이 수첩에 메모를 하고 미술사에 대한 공부를 이어간 그의 경비원 생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두 형제에게 미술관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심어주었던 어머니의 교육 자체도 남달랐지만, 브랭리의 인문학적 감성과 노력 또한 남달랐던 것은 분명하다.
조금이지만 미국사회 단면을 잘 보여주는 책
여전히 사회의 이런저런 면에 관심이 많은 내게, 이 책은 미국 사회의 단면을 여러 가지로 보여주었기에 고마웠다. 저임금구조로 인한 오버타임에 대한 인식도 엿볼 수 있었고.... 그저 걷고 간단한 것에 답하는 것이지만 장시간 노동에 자신없었던 초년병 브랭리와 달리 일에 익숙해진 브랭리는 오버타임에도 도전하며 벌이에 열의를 보이기도 하고, 책 후반부에서는 두 아이 육아에 들어가는 돈을 언급하며, 안정적이지만 높은 연봉을 포기해야하는 이 루틴한 일을 떠나야하는 고민을 시작한다. 이런 현실이 거대하고도 복잡해보이는 미국사회 안에서도 그 기저를 작동시키는 근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작가가 현실 때문에 미술관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했기에 이야기 완성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난히 유색인종이 많았다는 경비원에 대한 소회에서도 미국사회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기에 연봉은 낮아도 어쨌든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는 경비원이기에 미국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유색인종들에게는 고민해볼만한 선택지임이 분명하다.
밀덕을 위한 한 장 추천
유명한 총기회사 콜트에 대한 길지 않은 이야기는 밀덕에게도 추천할 만 하다. 서부개척 과정에서 인디언 코만치족과의 전투에서 콜트의 리볼버 권총이 맹위를 떨쳤다는 설명과 함께 전시된 권총을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은 미국 역사에서 '총기'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며, 특히 서부 개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다음의 한 구절에 총기와 미국 문화의 관계가 응축되어 있다.
당시 미국 서부에서는 "신은 인류를 만들었고, 샘 콜트는 그들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쿨하게 떠난 브랭리, 유쾌했던 그의 경비원 생활
경비원 브랭리는 동료들에게 마지막 근무를 함께 하며 쿨하게 떠났다. 이러한 쿨한 작별은 그가 가이드로 미술관을 자주 찾을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브랭리가 경비원 일을 유쾌하게 수행했기에 가능했다. 어디가나 진상은 있고 어느 일이나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큰 슬픔을 겪고 조용한 일을 찾아온 주인공은 신중하고 근면하게 그리고 밝은 태도로 진심으로 일에 임했고, 동료들과도 진심으로 소통하며 친분을 쌓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밝은 면을 보라는 말이 얼마나 잔소리에 가까우며, 얼마나 일방향적인 말인지는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제 인생에서 이리저리 책임질 일이 많아지고 눈치도 많이 봐야하는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매사 유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게, 신중하지만 진심으로 옆의 사람을.. 그리고 남을 대해야지만 유쾌하게 그 일을 기억할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래도 그림 하나는 기억에 남겨야하지 않을까 싶어, 브랭리가 꽤나 좋아했던 브뢰헬의 '곡물수확'을 찾아봤다. (아쉽게도 책에는 몇몇 스케치만 있을 뿐 그림 원본은 하나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부산스러움보다는 피곤함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들판의 풍경이 인상적이었고, 그래도 그 안에서 비춰지는 사람들의 유대감이 느껴졌다.
1500년대 유럽의 일상생활과 계절의 변화를 그린 브뢰헬의 월력도 '곡물 수확 (8월)'
이 작품은 브뢰헬이 1565년경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월력도 중에서 8월 달에 밀을 수확하는 모습을 그린 것...
blog.naver.com
진심으로 일을 대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비록 대부분의 그림을 감상하지 못했어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른바 약간의 '도메인 지식'을 가지고 대단한 깊이를 가진 에세이로 포장되는 이런저런 책들과 달리 충분한 짜임새와 깊이를 가졌기에 책장을 덮은 후에도 여운이 남는 괜찮은 책이었다. 끝.
'생각 과잉 - 단순한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논문 '16세기 유럽의 한국 - 여행기와 예수회 기록을 중심으로' - 역사 속의 예수회 (9) (9) | 2026.03.10 |
|---|---|
| 논문 '18세기 예수회 교육의 특성과 영향' - 역사 속의 예수회 (8) (2) | 2026.03.04 |
| 믿고 찾는 액션 스피릿 - 비키퍼(2024,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11) | 2025.09.17 |
| 포케, 건강식의 파도에 올라타다 (7) | 2025.09.16 |
| 독서60 - 지구 끝의 온실(2021, 김초엽) (31) | 202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