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년 - 전쟁 덕후

진정한 밀리터리 영화의 리얼리즘 - 블랙호크다운(2001, 리들리 스콧 감독)

마셜 2023. 12. 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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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 영화)

 
1. 명작 밀리터리 영화
 벌써 20년이 넘게 지나, 이제는 클래식 영화가 되었지만, 지금 다시 봐도 '블랙호크다운'은 명작이다. 명감독 리들리 스콧 감독의 솜씨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지금 보면 조쉬 하트넷, 톰 시즈모어, 이완 맥그리거, 에릭 바다, 올랜드 볼룸 등 대단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또한, 일단 모가디슈 전투 자체가 워낙 참혹한 실화이기에... 실제 사실이 주는 무게감 또한 상당하다.. 이런 모든 요소가 더해진 덕분인지, 오랜만에 다시 본 '블랙호크다운'은 세월의 무게 따위는 잊은 듯이 촌스러움 따위는 없이... 이제는 나이 먹은 영화팬에게 여전히 새로운 매력을 뿜어냈다.
 
 생각해보면,  아이린 작전은  재미있는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재는 아니다. 일단 발단은 헬기 작전 중심이지만, 끊임없이 험비 중심 콘보이 작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델타포스와 레인저의 사투가 한꺼번에 벌어져야 하기에... 입체적으로 잘 묘사하지 않으면, 전투 사이의 맥이 끊어지기 쉽다. 게다가 애초에 작전 구상 자체가 지휘부의 큰 오판이 있었기에... 영화를 여러 번 본 골수팬들은 답답함을 깔고 지켜보게 된다. 즉, 뭐 대단한 명예나 국운을 건 전투도 아니었고... 초반부 장병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경장비만 챙기고 탑승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갑자기 결사전으로 변한 전투였다. 하지만,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으로 순식간에 번지는 과정을 잘 그려냈으니, 비록 상업적으로 위대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밀리터리 영화 중에서는 과정 전개와 전투 양상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는 진정 명작이라 하겠다. 
 
2. 비정규군 전투의 참혹함
 영화에서 다룬 '아이린'이라 불리는 모가디슈의 군사작전은 지휘부 오판으로 인해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흐른다. 투입된 병력이 델타포스와 레인저로 대변되는 최정예 병력이어도 소용이 없었고, 블랙호크와 험비로 기동성을 최대한 높였어도 소용없었다. 
 헬기와 험비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끝 없는 무장한 민병대 병력이 밀려들고, RPG-7이 끝없이 날아드는 것만으로도, 그저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관객들이 당시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악마의 불화살처럼 끝없이 날아드는 RPG-7 (출처 : 다음영화)

 
 실제로 왠만한 사격으로는 끄덕 없는 블랙호크가 두 대가 격추된 것은 RPG-7이 동시에 여러 방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양에는 장사 없다는 격언이 생각나는 장면.....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 공격헬기가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휴대형 유도 미사일에 격추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소수의 정규군이 무리하게 작전을 위해 진입했다가 그야말로 민병대의 늪에 빠지게 되었고, 그 참혹함은 영화 전체를 통해 잘 묘사된다.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총을 들고 나타나는 현지 민병대(혹은 그냥 현지인들)는 정말 좀비 같은 이미지가 연상될 정도...  
 
3. 모가디슈 -> 난장판은 여전히
 88올림픽 유치전이 한창이던 시절 모가디슈에 벌어졌던 내전을 배경으로 한국과 북한의 외교관이 탈출하는 과정을 다루었던 '모가디슈', 그로부터 몇 년 되지 않은 1993년에 이 참혹한 전투가 있었던 것을 보면, 모가디슈라는 공간은 정말 아프리카에 중첩된 모순과 문제점이 폭발하는 곳이다. 아직도 현지 정세가 안정되지 않았고, 여전히 테러가 횡횡한다는 뉴스 보도를 보면, 지금보다도 훨씬 기세등등했던 1993년 미군 최정예부대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정말 모가디슈의 현실이고, 한계라고도 하겠다. 

모가디슈 차량폭발 사망자 100명 이상으로 늘어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중심가에서 29일(현지시간) 발생한 차량 자폭 테러의 사망자가 100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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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복무 경험이 그대로...
 이 영화에 빠져든 건.. 아무래도 미군 소속 대전차보병으로 복무했던 군 경험 때문이었다. 흔히 11H이라 불렸던 대전차보병은 보병 중에서, 험비를 중심으로 한 병과로 주로 빠르게 이동해야하는 작전에 활용되거나, 탱크를 잡는 역할이 주어진다. 탱크부대와 정면대결을 할 만큼 강한 화력을 가졌느냐? 그렇지는 않다. 다만, TOW 미사일로 대표되는... 가성비가 끝내주는... (쉽게 말해 TOW 미사일을 쏘는 중대 하나가 전멸해도, 탱크 한 대를 완파한다면 나쁘지 않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었다.) 화기를 활용해서 기습공격을 목표로 한다. 
 영화에서 TOW 미사일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만큼이나 친숙했고 많이 훈련했던 50cal 기관총은 당시 기억이 되살아날 정도로 리얼하게 등장한다. 

험비에서 외로이 사투를 벌이는 50cal 거너 (출처 : iMdb)
민병대도 능숙하게 사용하는 50cal (출처 : 다음영화)

 
 50cal이 위대한 기관총이라고 평가받고, 미군 주력 화기로 이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말 단순한 구조로... 고장이 잘 안 나고, 조작이 쉽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현지 민병대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한다. 실제로 안전장치가 없을 정도로 구조는 단순하고, 그래서 고속으로 총탄을 발사하면서도 거의 기능고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험비에 설치하기도 쉽고, 무겁긴 하지만 한 명이 운반할 수 있어서, 산악지형 등에도 설치가 가능하기도 하고..... 
 단점이라면, 어쩔수 없이 반동이 심하다. 상당한 사거리와 정확도를 동시에 얻는 대신에 어느 정도 무게를 선택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극 중에서 에릭 바나가 50cal 거너가 조준사격에 쓰러지자, 분노에 차서 난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반동을 감안하면  그렇게 쏘면서 조준사격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다.... 다만, 최정예 델타포스로 나오는 에릭 바나가 엄청난 근육질이었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을지도... 
 아직은 군복무 경험이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강렬하게 남아있던 시절, 상영관에서 만난 '블랙호크다운'은 그야말로 쇼크였다. 아 11H이 정말 저렇게 파리목숨이구나. 선임들 말이 맞았네...라고 생각에 젖어들때쯤.. 다행히 출동한 파키스탄 장갑차들이 고립된 대원들을 구해내면서 영화는 끝이 났다. 

난 결국 경험하지 못했던 Air Assault (출처: 다음영화)

 
5. 하필 역사동아리 사람들과 영화를 봤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역사 동아리는 운영이 쉽지 않았다.  IMF를 겪었던 대학가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극적으로 꺾였고, 역사도 마찬가지여서 소수 인원이 모이는 정도로 유지되는 것에도 선배들은 안도의 표정을 짓곤 했었다. 모여든 멤버들이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대소사 결정에 치열한 토론이 수반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한 토론과 과정에 지치다 보면, 그냥 영화나 보러 가자.. 술이나 마시러 가자.. 이렇게 슁 하니 놀러 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 중 하나여서, 가까운 상영관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스마트폰 예매 같은 건 없던 시절... 함께 간 사람들 수만큼 현장에서 표를 사고 들어간 상영관.... 어.... 이게 아닌데... 이상하다... 군 시절의 무게감에 짓눌린 두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상영관 앞에 다시 선 사람들 앞에서 차마 난 재미있었느냐고 물을 수도 없었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한 후배가 말했다. 
 "자, 영화 고른 사람이 술 사야지?"
 술을 내가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나보고 사라고 했어도 별 변명은 못했을듯... 나에게는, 그리고 지금 20년이 넘게 지나 보니..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겐 손꼽히는 명작이지만, 근현대사를 공부하던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색다른(?), 이상한 경험에 불과했을 것 같아서,.. 그때를 돌아보면, 아직도 내 선택에 피식 웃음이 난다. 

당시 감성 팜플렛 (출처: 다음영화)

 
6. 작전 자체의 문제였는가?
 글을 쓰는 김에, 간략하게만 되짚어 보면, 작전 '아이린'은 그 자체로 무모하기 짝이 없다고 봐야한다. 
 예상과 달리 끝도 없이 달려드는 민병대를 보면, 100명도 안되는 소수 지상군 병력으로 잽싸게 유력인사들만 납치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깜찍한 오판이었음이 쉽게 드러난다. 
 자신들이 주민들을 위해,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므로, 극력 저항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 얼마나 나이브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만, 뭐든지 역사적으로 오판이 이루어질 때는, 기본 전제부터 잘못 세운 경우가 많다. 
 작전 세부내용 자체도 문제가 많다. 
 험비/트럭 수송작전을 맡은 대니 맥나이트 중령(톰 시즈모어, 아마도 11H이 아니었을까?!!)은  작전회의를 마치고, 다른 간부들에게 니들은 헬기에서 편안히 내려다볼 테고, 우린 아래서 x고생할 테니...라고 솔직하게 지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미 결정된 작전, 불가를 외칠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한 마디 하며 불안한 심정을 눌렀겠지만, 그 후 벌어지는 작전에서 장병들이 그렇게 죽어나갈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최애 배우 중 한 명, 늘 정말 베테랑 군인 같은 톰 시즈모어 (출처 : 다음영화)

 
 험비를 타고 작전을 펼치는 경무장 보병에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격을 하는 적은 그야말로 공포 자체이고, 그러한 적이 군데군데 조준사격을 노리는 적지를 장애물을 피해 커브길을 돌아나가야 한다면, 이건 뭐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에 다름없다. 험비 차체가 튼튼하긴 하지만, 이는 웬만하면 굴러간다는 거지.. 장갑이 잘 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차 위에 탑승하는 기관총 거너는 커브길로 구성된 시가지, 거기에 장애물이 있어서 속도가 느려진다면... 혹은 정차한다면.. 그야말로 조준사격을 하는 적에겐 가만히 않아있는 사격표적과 다름이 없다. 
 애초에 공격헬기가 적절한 지원을 하며 길을 뚫어주던지... 아니면, 장갑차를 선두에 세워 장애물과 집중사격을 돌파할 계획이 아니었다면 큰 희생은 필연적이었던 셈... 
 물론 장갑차를 선두에 세울 경우, 그나마도 느렸던 이동속도가 더 느려져서 다른 차량이 조준사격 밥이 되었을 테고, (그리고 미군은 장갑차가 없었고...) 원활한 작전 지원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던 중형헬기 블랙호크는 두 대나 격추되면서 고생하는 수송대를 뺑뺑이 돌리고, 애꿎은 델타포스 대원들 목숨만 앗아갔으니... 결론은 해서는 안될 작전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공은 시킬 수 있으나, 당시 미군 전력으로는 너무나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

작전의 결정적 실패, 블랙호크 추락 (출처: 다음영화)

 
7. This is civil war.
 어지러운 소말리아 현지 역사를 살펴볼 능력은 없으나, 영화 초반부 아이디드 장군의 오른팔이 시가를 물고 당당하게 훈계조로 이야기하는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This is civil war."
 니 전쟁이 아니니, 나서지 말라고 당당하게 훈계하는 어조는 영화 초반부 활기찬 미군 장병들 모습에도 불구하고 불길함을 드리우는데, 실제로 이 전투의 엄청난 피해 때문에 미국은 아프리카 현지 상황에 전투병 파견을 꺼리는 쪽으로 정책이 선회하게 된다... 어찌보면 앞을 내다본 한 마디는 아니었을까. 
 당시는 지금보다는 '팍스-아메리카나'의 헛점과 한계, 부당함을 말하기 쉬웠던 한국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미중 패권전쟁 와중에 미국 중심 질서에서 실리를 챙겨야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에... 이런 비판을 하기도 어려워졌지만, 아직은 붕괴된 냉전에 적응이 덜 되었던 시기... 전 세계 골치 아픈 분쟁지역이 생기면 미국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통념은 당시에도, 다시 봐도 공감도 되지 않고... 조급해 보인다. 군사작전을 해야 한다면 쉽고 빠른 길을 택하는 것이 손자병법급 설루션이긴 하겠으나, 현지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작전을 강행했던 당시 지휘관 개리슨 장군의 행보가.. 어찌 보면 정점에 달했던 '팍스-아메리카나'의 모습이자 한계는 아니었을까.  
 
8. 그래도 전우애는 늘 좋은 소재
 그래도 참혹한 전투 속에, 용기를 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전우애는 늘 밀리터리물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이고, 이 영화에서도 약간 선을 넘는 수준에서 잘 묘사된다. 처참하게 돌아오는 동료들 모습에 팔 깁스를 자르려 하고, 재차 전선으로 나가는 건 못하겠다는 병사가 결국.. 차에 오르는 장면 등은... 쉽지 않은 현실에 용기를 내는 어떤 사람들 모습을 보여줬다 하겠다.. 더하여 그 과정이 꼭 아름답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어쨌든 비틀거렸어도 용기를 내어 본분을 다하는 사람 모습은 눈에 들어왔고, 목적 자체가 불문명했던 참혹한 전투에서.. 그나마 영화 막판 감정을 고조시키는 요소로 잘 작용했다. 

끝까지 시신을 수습하는 미군 ( 출처: imdb)

 
9. 흥행 :  1억7,300만 달러 / 9,200만 달러
 이때만 해도,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영화는 흥행불패였다. 제리 브룩하이머-리들리 스콧 조합인 걸 생각하면, 이 정도면 딱히 대박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그럴만한 것이 밀리터리팬으로서 대단히 리얼하다. 고증이 철저하다. 그 안에서 장병들의 평범함도 잘 드러냈다 손뼉 치지만, 그저 오락영화로는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고어 수준 장면이 가득하고, 최고위 지휘관들은 계속해서 오판만 해대는 데, 현장지휘관들은 계속 뛰어다니기만 하는 답답한 구조가 실격이었을 것이다. 
 
10. 순위 : 1위 / 13위
 아직까지 랭킹에 올린 영화 중은 단연 1위다. 개인적 기억도 기억이거니와, 이 정도 고증을 통해 당시 장병들의 시각을  그대로 표현해낸 것만으로도... 그리고 전사자 발생 때마다, 사기가 추락하는 현장 분위기까지 담아낸 것만으로도 다른 영화보다 높은 평점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울러 정말 너무나 잘 어울렸던 톰 시즈모어의 군인 연기를 이제 볼 수 없기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검증되었던 그의 완성된 밀리터리물 연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반가운 클래식 영화이다. 
 
1위 : '블랙호크다운', 9.5 
2위 : '헌트' , 9.0  
3위 : '최종병기, 활', 8.0
4위 : '용의자' / '남한산성', 7.5
6위 : '미드웨이(2019)', 7.1
7위 : '퓨리', 7.0  
8위 : '안시성', 6.5
9위 : '그레이하운드', 6.4
10위 : '연평해전', 5.6
11위 : '강철비2: 정상회담' 5.5
12위 : '간첩', 5.0
13위 :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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