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년 - 전쟁 덕후

병자호란에 대한 영화 - 최종병기 활(2011, 김한민 감독)

마셜 2022. 5. 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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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병자호란에 대한 임용한 박사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저런 잡념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물론 아주 새로운 발상이나 궁금증은 아니었는데,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자호란에 대한 관심이 적은가? 라는 궁금증은 선명해졌다. 학계에서의 연구는 활발하다는 것은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은 어떠한가라는 관점에서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를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검색결과는 의외로 단촐... 최근 '남한산성'의 개봉이 없었다면, 그나마 초라했을 법한 대중문화 속의 병자호란, 비록 그 전쟁의 함의를 다룬 영화는 아니었지만,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큰 성공을 거둔 '최종병기 활'은 단연 눈에 띄었다.

영화 '남한산성'에 대해서는 할 말도 많고, 불만도 많지만, 추후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짧게나마 '최종병기 활'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1. 기대보다 건질게 없었던 확장판.
벌써 개봉한 지 10년이 넘게 지나, 각종 OTT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이다. 어렵지 않게 찾아내고 보니, '확장판'이 따로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 어차피 몇 번이나 본 영화.. 뭔가 새로운게 있는지 한 번 찾아내보자 라는 마음으로 선택했다.

사실 전체 촬영본 중 상업적 성공 등을 위해 잘려나간 부분을 다시 포함시킨 것이 확장판이라면, 큰 기대를 안 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지옥의 묵시록'이나 '대부'처럼 영화사에 큰 의미로 남을만한 작품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고... 그런 관점에서 봐서, 별게 없네 하는... 실망감을 줄일 수도 있었고...

그래도 기억나는 몇 장면을 꼽아보자면, 우선 힘들게 돌아온 자인과 서군이 뗏목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을 때, 국법을 앞세워 귀국을 막는 군인들과의 충돌, 쥬신타에게 목이 베인 이한위의 최후 등등 이었다. 그리고 초반부 개가 남이를 쫓는 장면도 극장판에서는 없었던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잔인한 장면을 많이 편집한 것 같다. 가장 큰 영화 강점이 특유의 속도감임을 생각하면, 잔인한 장면 생략은 적절했던 것 같고, 압록강을 건널 때, 포로 귀국을 둔 실랑이는 이야기 상으로는 필요했으나, 감독 맘에 들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사실 초반 이야기 세팅 자체를 너무 자막에 의존한 지라, 더 이상 포로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면, 액션물이 아닌 너무나 사극처럼 되버렸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확장판을 볼만한 가치는 없었고, 감독이 고민해서 선택한 분량만 들어간 극장판이 낫다는 개인적 결론


2. 왜 2011년까지 이렇다할 병자호란에 대한 영화가 없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영화가 90년대 후반부터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시장을 확장해왔지만, 전쟁을 다룬 역사물이 별로 없었다. 물론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이전으로 작품은 '천군' 등 유사역사장르를 제외하고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경우를 찾기 어려웠다.
애초에 훨씬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고, 한국사 자체가 영광스러운 전쟁 승리가 별로 없으니, 상업적 성공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생각해야 하는 영화계에서 적극적이긴 어려웠을 거다.

3. 그래서 소중한 존재 - 김한민 감독
소문난 '이상한' 존재였다고 한다. 영화계에 입문할 때부터 이순진 장군 이야기를 꼭 영화화할 것이라며, '엄청난' 포부를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소망을 결국 이룬 대성공한 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로 데뷔한 감독은 상업영화에 대한 감을 잡았는지, 그 다음 바로 명량해전으로 돌격했고, 그 결과는 아마 모든 국민이 아는 영화 '명량'으로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성공을 거두었다.
이순신 장군의 3대첩을 모두 영화화하겠다는 엄청난 스케일의 꿈을 모두 실현하기 위해, 이제 한산도대첩을 곧 스크린에 건다고 하고, 노량이 곧 크랭크업한다고 하니, 전쟁영화 덕후로서는 고마울 뿐이고, 그에게 상업적 성공의 힘을 알려준 '최종병기 활'은 더욱 고마운 영화이다.
김 감독이 엄청나게 창의적이거나, 예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아도, 그래도 엄청난 펀딩을 해서라도 큰 스케일의 전쟁영화를 찍는 감독이 난 그냥 좋다.

4. 영화를 통해서 보는 병자호란 - 피로인
사실 영화는 역사 이야기를 별로 안 한다. 주인공 남이의 신궁 솜씨를 보이기도 바쁘고, 만주 기병부대의 추격전을 보여기주기도 숨이 가쁘니까... 하지만.. 아쉽진 않다.
그래도 두 시간짜리 역사(전쟁)물을 봤으니, 한 마디 해보자면, 확장판에서만 볼 수 있는 서군과 자인이 귀국하려할 때의 군관과의 실랑이는 실제로 역사적 사실이고 현실은 더욱 처참했다.
만주를 지배하면서도 인구부족으로 늘 고민이 많았던 만주족은 병자호란을 통해 끌어간 50만 이상의 조선인 포로가 너무나 소중했고, 절대 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권 붕괴를 막기위해 늘 전전긍긍했던 당시 인조를 중심으로한 조선 조정은 청의 심기를 건드려야 하는 포로 송환에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결국 그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며 각자도생해야했다. 그리고 힘들게 돌아온 소수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으니, 이는 임진왜란 때 왜에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정'이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지금처럼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것은 아니었으니,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다지만, 이러한 역사의 반복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편전 (출처 : 네이버 영화)

5. 편전과 육량시 - 영화의 백미
조선의 각궁이 유명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 있고, 여러 기록으로도 증명된다. 사실 이 영화는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와 연결시켜 생각하기 보다, '각궁'이라는 조선의 병기에 대한 화려한 액션을 보여줬다는 점에 집중하면 훨씬 재미있다.
역사소년인 내가 정말 재미있었던 부분도 글과 사진으로만 봤던 육량시와 편전을 모두 생생하게 재현한 영상(과장된 것도 많았겠지만)이었다. 특히, 남이가 편전을 만들어서, 적을 명중시키는 장면은 실로 감동이었다.
편전은 실제로 조선에서만 쓰였던 지역특화형 무기라 할 수 있는데, '통아'라는 대나무통에 넣어서 소형화살을 넣어서 발사하며, '애깃살'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통아로 가려지는 탓에 발사장면이 보이지 않아서,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장점도 있고, 짧고 가벼운데 같은 힘을 실어 쏘기 때문에 더 먼 거리를 남아 강한 관통력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약한 갑옷을 뚫을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는 건데, 산성에서 방어전을 생각해야했던 조선 후기 군사전략에서는 매우 유용했을 것이다.
육량시 또한 영화에서 훌륭하게 재현해냈는데, 촉이 크게 무거운 쇠로 되어 있어서, 왠만한 나무를 박살내버리는 위력을 영화에서 여러 차례 보여준다. 활통을 한 방에 산산조각내고, 소나무를 뚫을듯이 흠집내는 육량시 위력을 처음 볼 때,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편전과 육량시 같은 역사 속에 잊혀졌던 아이템을 다시 사람들 눈 앞에 재현해내는 것이 영화적 상상력의 큰 순기능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면에 '최종병기 활'은 참 좋은 영화이다.

곧 김한민 감독의 한산도대첩이 개봉한다. 편전만큼 존재 자체로 감동인 아이템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전쟁물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김한민 감독의 또다른 대작이 개봉하기 전에, 그 실력을 알린 데뷔작 '최종병시 활'을 혹시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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